천수만이무기 2009. 5. 4. 10:46



   


♣ 해미읍성(海美邑城)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읍성이란 읍을 둘러싸고 세운 평지성으로 해미읍성 외에 고창읍성, 낙안읍성 등이 유명하다.
지정번호 :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116호
위치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조선시대 축성된 읍성 중 가장 잘 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성으로 태종 18년(1418년)에 축성을 시작하여 성종22년에 완공했다. 총 길이1,800m 성벽높이 5m로 정문인 진남문과 망루는 보존되어 있으나 동문과 서문은 붕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며, 선조 12년(1578) 충무공 이순신이 병사영의 군관으로 부임하여 10개월간 근무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5만9천 평의 넓은 벌판에 이 고장에서 나는 화강암으로 성 외곽을 쌓고 안쪽을 흙으로 쌓아 올려 높이 5m, 둘레 1천8백m의 성곽을 만든 뒤 성 벽밖에 깊이 2m의 연못을 파놓은 외침을 막던 전형적인 성이다.

읍성의 정문인 진남문은 무지개 모양을 본떠 만든 석문으로, 축조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단층의 팔작지붕이 위풍당당하다. 북서쪽에는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성밖에 깊이 판 해자가 아직도 남아 있다.
성벽 둘레에 탱자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일명 '지성(탱자나무성)' 이라고도 불렸으나 지금은 탱자나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진남문을 지나 100m쯤 가면 관아의 정문(사진 상단)과 동헌 9칸을 비록해 내아, 객사 등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 안에서 장이 서는 등 지역주민들의 생활공간으로 활용되었지만 지금은 문화재관리 차원에서 모두 성밖으로 옮겨졌다.
영장(營將)을 두고 서해안 방어의 임무를 담당하던 곳이며, 폐성된 지 오래되어 성곽이 일부 허물어지고, 성 안의 건물이 철거되어 그자리에 해미초등학교와 우체국 ·민가 등이 들어서는 등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었으나, 1973년부터 읍성의 복원사업을 실시, 민가 및 관공서가 철거되었다.
본래의 규모는 동 ·서 ·남의 3문이 있었고, 옹성(甕城)이 2개소, 객사(客舍) 2동, 포루(砲樓) 2동, 동헌(東軒) 1동, 총안(銃眼) 380개소, 수상각(水上閣) 1개소, 신당원(神堂院) 1개소 등 매우 큰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복원된 것은 3문과 객사 2동, 동헌 1동, 망루 1개소뿐이다.

최근 복원 및 정화사업을 벌여 옛 모습을 되찾아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조선말 천주교도들의 순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천주교 박해 당시 관아가 있던 해미읍성으로 충청도 각 지역에서 수 많은 신자들이 잡혀와 고문받고 죽음을 당했으며, 특히 1866년 박해때에는 1천여명이 이곳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성내 광장에는 대원군 집정 당시 체포된 천주교도들이 갇혀있던 감옥터와 나뭇가지에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노거수 회화나무가 서 있다.
바로 성문 밖 도로변에는 회화나무에 매달려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은 신도들을 돌 위에 태질해 살해했던 자리개돌이 있어 천주교도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성벽 주위에는 탱자나무를 심어 적병을 막는데 이용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 해미읍성과 천주교 박해
1790년부터 100년간이나 계속된 조선의 천주교 박해. 크게 네 차례로 나뉘는데 가장 극렬했던 것은 병인박해(1866∼73년)다.
8000여 명이 순교하는 참극이 자행됐다. 당시 ‘천주학쟁이’에 대한 국가의 탄압은 전국적. 그 중 천주교가 일찍이 전파된 충남의 서해안이 특히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지역의 천주교 역사는 25세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1821∼46)의 고향(당진군 우강면 솔뫼마을)이 있는 것만 보아도 그 깊이가 짐작된다.
당시 해미 현(현재 서산시 해미 읍)은 이 지역 중심지 가운데 하나. 이 지역 유일한 군사 진영(읍성)으로 장병 1500명을 거느린 최고 지휘관(영장)이 현감을 겸직해 다스렸다.
당시 천주교인은 국사범. 따라서 국사범 처벌 권을 가졌던 해미읍성 지휘관은 자기 마음대로 천주교인을 처벌할 수 있었다.
해미읍성은 그 박해와 순교의 현장이다. 1791년부터 병인박해까지 이지역 순교자는 무려 3000여명(한국 천주교 추정).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도 예서 10년 옥살이 끝에 순교했다.

○ 해미읍성의 역사와 내부
한국의 성은 도성 읍성 산성 행성(장성)등 네 종류로 나뉜다. 도성은 수도 방어용, 읍성은 지방 도시 방어용인데 해미읍성은 충남 서해안의 방어 기지로 축조된 석성(완공 1491년)이다.
성벽과 진남루(정문)만 원형 그대로 남아 있고 동헌 등 부속 건물은 터만 남았다.
1579년 35세의 장교 이순신이 훈련원 교관으로 부임해 10개월 근무한 기록도 남아 있다.
총 길이 1.8km의 성곽은 높이 4∼5m로 야산 하나를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다. 성내는 고창읍성 낙안 읍성과 달리 텅 비어 좀 황량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천주교 박해 유적만큼은 잘 보존돼 있다. 대표적인 것은 진남루를 통과하면 오른 편에 보이는 호야 나무. 수많은 교인이 나뭇가지에 머리채를 묶인 채 모진 고문을 받았던 역사의 나무다.
입장료: 없음
해미읍성 관리사무소 (041) 660-2540

 

 

 

 

 

 

 

 

 

 

 

 

 

 

 

 

 

 

 

 

 

 

  ○ 현지교통
서산 공용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 및 시내버스 수시 운행, 해미에서 하차
시외버스 06:40-20:50까지 약 10분 간격 운행
시내버스 06:25-20:00까지 약 15분 간격 운행
○ 자가운전
1) 서해안고속도로 - 해미IC - 해미읍 - 해미읍성
2) 경부고속도로 천안나들목 - 아산시 - 21번 국도 - 예산읍 - 45번 국도 - 삽교 - 해미고개 - 한서대학교 입구 - 산수저수지 - 해미읍성
 
  문 의 처
서산시청 (041-660-2224)  
해미성당 (041-688-1123)
  수덕사, 덕산도립공원, 가야산, 덕산온천, 개심사, 서산축협목장 벚꽃길,
천수만방조제, 간월도, 부석사, 서산마애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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