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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관아(結城官衙)와 향교(鄕校)

천수만이무기 2009. 7. 11. 14:12

 

결성현(結城縣)

백제의 결기군(結己郡)이었다. 신라의 삼국 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결성군(潔城郡)으로 고치고 공주 관하에 있었으며, 영현(領縣)으로 신읍(新邑)·신량(新陽)·흥양(興陽) 현을 관할했다. 고려시대에는 1018년(현종 9)에 홍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태종 13)에 현이 되었다. 1733(영조 9)~36년에 고을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했다 하여 보령현에 합속되기도 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홍주부 결성군, 1896년에 충청남도 결성군이 되었다. 1914년의 군면 폐합에 의하여 홍주군과 결성군을 합하여 홍성군으로 이름하고, 결성군의 현내면·용천면을 용천면으로, 은하면·가산면을 은하면으로, 구항·두암·화산면을 구항면으로, 하서·상서면을 서부면으로, 광천면·홍주군·구경면을 광천면으로 통합했다. 새우젓으로 유명한 광천읍은 조선시대에도 내포(內浦) 지역의 주요 항구였으나 1960년대 이후 광천까지 들어오는 내륙수로기능이 점차 약해지고, 안면도가 육지와 연결되어 안면도·원산도 등 도서지방이 서산쪽으로 연계 관계를 많이 가지게 되었으며, 천수만에 방조제를 막아 토사의 퇴적이 심해져 광천을 중심으로 했던 상업기능이 쇠퇴해가고 있다.→ 홍성군

 

결성현 동헌(結城縣 東軒)

조선시대 홍성지방 관리들이 업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행정업무를 처리하던 동헌과 치안업무를 처리하던 형방청, 책과 문서를 보관하면서 관리의 자제가 지내던 책실로 구성되어 있다.

동헌 건물은 고려 말에 결성면 금곡리 분우터에 있다가 1400년 지금의 결성으로 읍을 옮겼을 때 읍의 산성 정상에 있었다. 1665년 현재의 위치에 재건된 이후 수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다가 결성군이 홍주군과 통합하면서 현치소의 기능을 잃은 이후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 3동의 건물은 최근에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동헌은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형방청은 ㄱ자 모양을 하고 있으며, 책실은 앞면 2칸, 옆면 1칸 반 크기로 지붕은 앞에서 볼 때 사다리꼴인 우진각지붕이다 

 

 

결성 동헌 정문

 
결성현 동헌

 

 

 

 
사또를 도와 지방행정 실무를 담당했던 아전 중,

형방 아전들의 집무처인 형방청( = 형장청).
 

 

 

 

결성관아(結城官衙) 동헌의 정문

 

 

<동헌:망일헌>(東軒 ; 望日軒)

이첨(李詹)이 1392년경 결성현의 초대 감무(監務)로 임명되었다.

그 당시의 동헌자리는 성곡리 분우티(신금성지 옆)에 있었다.

1413년에 지금의 결성으로 읍을 옮기게 되자 지금의 318번지에 동헌 자리를 잡았다.

 1400년대에 창건되어 1665년에 재건한 이래로 여러 번 중수를 거듭해 왔다.

결성현이 홍주와 합군되면서 1500여 년 간의 현주치(懸主治)의 명맥이 단절되었다.

동헌 구실의 맥이 끊어지면서 이 건물은 국민학교에서 교실로 사용하였었다.

 1988년에 완전히 복원공사를 끝마치고 89년 4월 20일 충남문화재 자료 제306호로 지정을 받았다.

(홍성군청 홈페이지에서 인용)

 

 

 

책실(冊室) : 책과 문서를 보관하던 곳

 

 

이 곳 결성초등학교자리에는 원래 객사가 있었다고 한다. 객사는 관아의 외내 손님을 모시던 곳이다.

 41간의 큰 객관이었는데 1911년 2월 결성보통학교가 창설되면서 철거되었다.

 

 

 

결성초등학교 정문 앞에는 결성(結城)객사(客舍) 시비가 서 있다.

이 시비는 세종대왕 때 이 지역에 지독한 가뭄으로 백성들의 가난이 심화되자 왕이 재해대책의 경험이 많은 안순(安純)을 충청도 도순문 진휼사라는 직책을 주어 내려 보냈다. 그는 열심히 백성들과 힘을 합쳐 종내에는 백성들의 어려운 처지를 해결하였다고 한다. 이 시비는 그 당시 안순이 지은 시를 새겨놓은 것인데 아마도 철거되고 없는 객사(客舍)에 머무는 동안 지은 시로 보여 진다.  

 

시의 내용은 이러하다.

海島軒窓下 (해도헌창하) 바닷가 결성객사 창문 아래에서

風帆几案前 (풍범궤안전) 순풍에 돛단 배 책상 앞에 보이네.

孤城迷積雪 (고성미적설) 외로운 성 눈이 쌓여 길은 막혔고

喬木大寒然 (교목대한연) 큰 나뭇가지에 차가운 안개 서렸네.

無術醫民病 (무술의민병) 백성의 병 고칠 의술이 없으니

何時到日邊 (하시도일변) 어느 때 임금님 곁으로 갈 수 있으려나.

三峯行漸遠 (삼봉행점원) 한성으로 가는 길은 점점 멀어지는데

霜鬢自飄然 (상빈자표연) 서리 같은 귀밑머리 절로 나부끼네.

<문학박사 정우상 번역.>

 

재해를 해결하라는 임금의 명을 받고 왔으나 별로 일의 진전은 없고 큰 눈이 내려

거동도 힘든 상황의 노 충신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리라.

 

형방문 또는 형장청이라는 현판을 붙인 이 건물은 

관아에 예속된 형사의 집무를 맡은 관리의 집무실이었던 듯하다.

 

 

 

 

형장청 옆에는 커다란 훼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 앞에 "신목(神木)의 유래비(由來碑)"가 서 있다.

그 유래비에 적힌 내용은 이러하다. 이 나무는 정광필의 증조인 사람이 결성의 현감으로 재임하다가

타지로 전임되어 가던 1,425년에 기념으로 심은 것인데 이 나무의 수령이 510년 되던 1935년에

결성 주재소에 근무하던 일본 경찰이 이 나무의 가지를 치고 나서 별안간 벙어리가 되어 일본으로

돌아간 일이 있었다. 이 일 이후 결성 주재소에 부임하는 일본경찰들은 반드시 이 나무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결성향교

 

결성향교는 고려때에 처음으로 세워졌으며 조선조의 1623,1674,1808년에

각각 수리하였으며 1923년에 고쳐 지었다고 하며 홍살문은

2003년에 세운 것이라는 설명이 안내판에 써있다.

향교건물은 결성면의 높은 언덕에 송림을 배경으로 서 있는데 명륜당과 대성전

그리고 유생들의 기숙사를 쓰이던 동재와 서재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결성향교는 1010년(고려 현종원년)에 건립되었다고 하여 고려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된 결성향교는 1623년(인조 1년) 도유가 가진(賈璡) 중수한 이래 여러차례의 중개수가 있었다. 1674년(현종 15년) 현감 남종표가 중수하였으며, 1699년(숙종 25년)의 중건과, 1763년(영조 39)의 개수, 1828년(순조 28년)의 개수, 1841년(헌종 7년)의 개수, 1865년(고종 2년)의 개수가 있었다. 1914년과 1922년에는 결성지역의 유림이 모은 기금에 의한 개수가 있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59년 당시 홍성군수 이원양에 의해서 개수가 있었고, 1976년 결성지역 유림 115명의 성금으로 개수가 있었으며, 1983년 군수 김선규에 의한 개수, 1987년의 개수, 1995년 전교 최동호에 의한 개수가 있었다.

외삼문 없이 전면에 명륜당을 두고 후면에 대성전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식 배치이다. 명륜당 전면은 급하고 대성전 후면은 숲으로 이루어 졌다.
명륜당과 동재 사이의 협문을 들어서면 좁은 명륜당 뒷마당이 나오고 곧이어 묘당공간으로 오르는 계단이 이어진다. 대성전이 있는 묘당공간에는 외곽으로 담이 둘러진 가운데 대성전을 두고 전면 서측에 조그만 제기고를 두고 있다. 가운데에 건물을 배치한 까닭에 대성전 앞마당이 협소해져서 공간적인 여유가 없다.

중심축선을 두고 명륜당과 내삼문, 대성전을 일직선 상에 배치하고 동측에 동재를 배치하였다. 서재가 없어 배치로 보면 비대칭이지만 중심건물로는 대칭을 이루고 있다. 명륜당 주위에는 담을 치지 않고 부분적으로 개방되어 있다. 더구나 서재가 없는 ??향으로 넓게 터져 있어서 더욱 개방된 공간이 된다.

결성향교의 외삼문-홍살문

 

결성향교의 정문

 

뒤쪽에서 본 결성향교의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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