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잠깐만요, 아내한테 물어보고요”와이프보이 뜬다? 본문
마마보이로 자란 남성 결혼뒤엔 배우자에 의존 연상연하 증가도 한몫
가부장서 양성평등 과정 과도기적 현상 시각도
회사생활 25년차인 이아무개(52) 부장은 얼마 전 한 부하직원 부인의 전화를 받고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남편이 감기몸살에 걸려 출근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병가 처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이 부장은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아무리 아파도 스스로 전화 한통 못 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요즘엔 어머니도 모자라 부인한테 업혀 살려는 남자들이 많다"고 씁쓸해했다.
'와이프보이'가 늘고 있다. 와이프보이는 1990년대에 한창 유행했던 '마마보이'를 본떠 만들어진 신조어로, 무엇이든 혼자 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의존하는 남자를 일컫는다. 와이프보이는 직장상사에겐 황당함을, 부인에게는 피곤함을 안겨주는 유약하고 의존적인 남성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중견기업 부장인 남아무개(54)씨도 지난달 부하직원 집들이에 갔다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부하직원의 아내가, 최근 그가 자기 남편을 크게 꾸짖은 일을 거론하며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니, 혼내지 말고 살살 타일러 달라"고 부탁하더라는 것이다. 남 부장은 "부하직원의 부인이 내가 (그 남편을) 혼낼 때 사용했던 단어까지 정확히 알고 있어 깜짝 놀랐다"며 "우리 세대에선 부끄러워 아내에게 꺼내지도 못했을 이야기를 속속들이 하는가 보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류회사에 다니는 김아무개(46) 차장은 요즘 부서 막내 사원 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다. 회식 때 2차로 노래방만 가려 해도 "아내가 늦게 귀가하는 걸 싫어한다", 1박2일 단합대회를 거론하면 "먼저 아내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말하는 등 늘 아내를 앞세워 토를 달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동창회에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런 직원이 어느 회사에나 있더라"며 "우스갯소리로 '마마보이가 자라 와이프보이가 된다'고 하던데, 솔직히 직장상사로선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와이프보이를 남편으로 둔 부인들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결혼 1년차인 김미선(30)씨는 남편을 대신해 치과진료를 예약해 주는 것은 물론 시간을 내서 같이 가주기까지 한다. 옷도 자신이 골라주고 헬스센터 등록도 대신 해 준다. 김씨는 "남들은 부부 금실이 좋다고 부러워하지만, 내가 엄마도 아닌데 사사건건 챙겨주려니 너무 피곤하다"고 하소연했다. 여성들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는 김씨와 비슷한 고민을 토로하는 글이 심심찮게 떠 있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조창현 부원장은 "마마보이로 자란 남성들이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해 결혼 뒤엔 부인에게 의존하는 것 같다"며 "연상연하 커플이 늘면서 '말 잘 듣는 착한 남편'을 원하는 부인들의 요구에 남성들이 충실하려 하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조 부원장은 "그러나 한편으론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가부장적이었던 문화가 양성평등 문화로 바뀌는 과도기적 현상의 한 예로도 볼 수 있어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한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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