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도둑놈과 도둑님 본문
도둑놈과 도둑님
어떤 사원에 괴짜스님이 살았는데, 어느 날 새로 부임한 젊은 스님의 인사를 받는 자리에서 “이 도둑놈아, 얼굴 한번 잘났구나”
얼결에 당한 공격이라 젊은 스님은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그냥 물러났다. 그러나 큰 스님의 말씀이라 무심히 들을 수 없어
그 말씀을 수십 번 반추 해봤더니 ‘과연 내가 도둑이 아니라 할 수 없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는 것.
그렇다! 인간이 목숨을 이끌고 이 세상을 살아가자면 수없이 많은 도둑질을 하게 된다.
도둑질이란 남의 것을 훔쳐 내 것으로 만드는 행위이지만, 넓게 보면 남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감추고, 엿보고 엿듣고, 빼앗는 것이
다 도둑이고, 의(義)가 아닌 불의도 도심(盜心)의 발로라고 한다. 서류를 변조해서 남의 땅을 내 땅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소득세, 양도세, 이중계약서를 만들어 내주머니를 불리는 것도 도둑이고, 학생이 컨닝하는 것이나 새치기 하는 것,
상인이 상품을 과장되게 포장하고 광고하는 것이나, 원가를 속여 파는 것도 도둑이고, 위장전입도 도둑이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남의 것을 직접 훔치거나, 완력과 흉기로 협박하고 목숨을 빼앗는 등 파렴치한이나 강력범과는 다르다.
이 세상에 의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 불의도 도심에서 나온 범죄라고 보면
이 세상에 도둑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 된다.
사람들이 그런 도둑질을 하고서도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는 것은 양심이 둔감해져서 그렇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살아가기 어려운 생활의 구조에도 문제가 있고, 생활습관에도 문제가 있다.
의사나 변호사, 판검사, 공무원, 교육자, 종교인, 문인, 기업인, 정치인들이 촌지와 뇌물, 후원금을 주고받는다든지,
결과적인 거짓말을 하고 돈을 챙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도 도둑질로 볼 수밖에 없다.
다만 그들의 범죄는 대부분 법망에 잘 걸리지 않는 것이 다르다. 그 행위(도둑질)가 간접적이고 관례적이고 합법적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술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은 아니고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이니,
알베르 까뮈가 말한 ‘인간사회의 부조리’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을 보고 ‘도둑놈’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도둑 아닌 놈’이라고 볼 수도 없어, ‘님’자의 존칭만 하나 붙여주기로 했다.
‘놈’이나 ‘님’이나 도둑질을 한 것은 같지만 님은 사회 질서나 법질서를 어기지는 않았다.
반칙의 정도가 덜했고 인간을 면전에서 속이거나 협박했거나 남의생명에 상해를 주지는 않았다.
그들 중엔 자기의 도둑행위를 보기 좋게 포장을 해서 자기기만까지 하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의미상으로 보면 도둑은 도둑이니, 도둑님들도 자기는 깨끗한 것처럼, 거룩한체하면, 위선자까지 된다.
그리고 거만할 이유도 없다. 놈과 님은 ‘오십보 백보’ 차이 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둑님은 사회질서를 준수하고 합법적으로 행위를 했다고 하지만 뜻이 있고 양심이 있고 분별력이 있는 도둑님 이라면,
스스로 자기를 냉정하게 진단하고 반성하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노블레스 오블리지’를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나눔의 철학을 실천하면서
나의 소유중 일부만이라도 사회에 되돌려 주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글모음 > 이런 저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의 술잔에 채워진 눈물 (0) | 2014.09.25 |
---|---|
희미해진 아버지像(상) (0) | 2014.05.26 |
노래 가사에 비쳐진 가수들의 運命 (0) | 2013.03.24 |
무슨 놈의 법이 핏줄도 바꿔... (0) | 2013.02.14 |
한국의 부모자식 관계 (0) | 2013.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