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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가을에서서..

천수만이무기 2019. 10. 2. 16:05



내 나이 가을에서서


젊었을 적

내 향기가 너무 짙어서

남의 향기를 맡을 줄 몰랐습니다.

내 밥그릇이 가득 차서

남의 밥그릇이

빈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사랑에 갈한 마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세월이 지나 퇴색의 계절

반짝 윤이 나고 풍성했던

나의 가진 것들 바래고

향기도 옅어지면서 은은히

풍겨오는 다른 이의 향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고픈 이들의 빈 소리도

들려옵니다.

목마른 이의 갈라지고

터진 마음도 보입니다.

이제야 보이는

이제야 들리는

내 삶의 늦은 깨달음

이제는 은은한

국화꽃향기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밥그릇 보다 빈 밥그릇을

먼저 채우겠습니다.

받은 사랑 잘 키워서

풍성히 나눠드리겠습니다.



내 나이 가을에 겸손의

언어로 채우겠습니다.


-이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