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내 나이 가을에서서.. 본문
내 나이 가을에서서
젊었을 적
내 향기가 너무 짙어서
남의 향기를 맡을 줄 몰랐습니다.
내 밥그릇이 가득 차서
남의 밥그릇이
빈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사랑에 갈한 마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세월이 지나 퇴색의 계절
반짝 윤이 나고 풍성했던
나의 가진 것들 바래고
향기도 옅어지면서 은은히
풍겨오는 다른 이의 향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고픈 이들의 빈 소리도
들려옵니다.
목마른 이의 갈라지고
터진 마음도 보입니다.
이제야 보이는
이제야 들리는
내 삶의 늦은 깨달음
이제는 은은한
국화꽃향기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밥그릇 보다 빈 밥그릇을
먼저 채우겠습니다.
받은 사랑 잘 키워서
풍성히 나눠드리겠습니다.
내 나이 가을에 겸손의
언어로 채우겠습니다.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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