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격세지감 (隔世之感) 본문

카테고리 없음

격세지감 (隔世之感)

천수만이무기 2020. 5. 19. 18:06

조선시대 서당에서는 책 한 권 뗄 때마다 세책례(洗冊禮),즉 책거리를 했다.
이때 스승은 제자에게 덕담하고,부모는 정성껏 음식을 준비한다.

이것은 학업의 완성을 축하하는 동시에 후배에게 그 책을 물려주는 좋은 풍속이었다.
千字文(천자문),  童蒙先習(동몽선습), 小學(소학)등의 초급과정에서 한권의 책을 뗄 때마다 베풀어지며, 
이는 스승과 동문수학하던 學童(학동)들이 스승의 노고에 답례하고 학동들을 격려하기 위한 조촐한 잔치였다.

 


이때 준비하는 음식은 국수와 송편이다. 
국수는 국수발처럼 길게 오래 학문에 정진하라는 뜻이고, 
송편은 비어있던 곳에 참깨, 팥, 콩등으로 속이 찬 것처럼 학문을 가득 채우라는 뜻이다. 
온 세상을 비추는 햇빛처럼 학문을 밝히라는 뜻으로 동그란 경단을 만들고,
예의 있고 슬기로운 사람이 되라는 바람으로 오륜을 뜻하는 오색 송편을 올린다.

깊은 뜻을 담아 차린 상을 스승에게 먼저 드리면 학생들은 
한 해 동안 익힌 책을 덮어 놓고 돌아서서 외우는 배강(背講)을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세책례에서는 마지막으로 훈장님이 성적표 대신 한자(漢字) 한글자가 들어 있는

봉투 하나씩을 학동(學童)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를 단자수신(單字修身)이라 한다.

단자수신(單字修身)은 단정하게 앉아서 마음을 정진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라는 뜻으로 주는 것이다.

배움이 더 필요한 서생에게는 “배울 학(學)”자를, 
서둘러 일을 그르치는 서생에게는 천천히 걷는 “소 우(牛)”자를, 
남에게 배려가 적고 독선적인 서생에게는 “어질 인(仁)”자를, 
게으른 서생에게는 “부지런 할 근(勤)”자를, 
성미 급한 서생에게는 “참을 인(忍)”자를, 
매사에 재치가 넘치고 과민하면 “어리석을 우(愚)”자를 넣었다.

늦잠 자는 버릇이 있는 학생에게는 닭 계(鷄)를,
효성이 부족하다 싶으면 까마귀 오(烏)를,
열심히 노력했지만 학업을 잘 따라오지 못한 학생이 있으면
없을 무(無) 대신 부지런한 근(勤)을 써 내민다.

 


책거리는 학업보다 인성과 배움의 자세를 먼저 생각했던 

선조들의 교육 철학이 들어 있다. 

 

 

 

1960년대 ~1970년대

 

선생님들은 일주일 중 토요일을 제외 하고는 학교 파하고 꼭꼭 가정방문을 다녔던 시절

고생들 많이 하셨지요 이런것이 참교육아닌가 싶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한 어린이의 모습 같습니다

 

 

가정방문

 

 

친구들과 선생님이 출석 못한 어린이 집에 방문 한 모습입니다

 

 

산골 오지마을의 초등학교 분교입니다.,이런 학교들 참으로 많았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어머니를 도와 조개를 캐고있는 모습입니다

 

 

교실이 부족하여 야외 공부들 많이도 하였습니다

 

 

학교에 책걸상도 고치고 굳은일 다하시던 분들이지요 학교마다 한분씩 꼭 있었습니다

 

 

경로사상을 배우기위해 할아버지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씩 공부하는 학교들도 많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정부에서 경로사상에 대한 계몽과 교육을 많이 하였답니다

 

 

붓글씨 대회입니다

 

 

시골에서는 나무난로, 대도시에서는 연탄날로 옹기종기 모여 공부하는 모습입니다

 

 

졸업식

 

 

졸업 사진 찍는 모습입니다

 

 

운동회 ...자루 통과하기,,장애물 경기지요

 

 

운동회 하는 날이면 온 가족이 다모여 온동네 잔치로서 하루종일 해가 질때까지 하였습니다

 

 

청군 백군 나뉘어 오자미를 던져서 광주리를 터트리면 학용품이 우수수 ?아지곤 했지요

 

 

남여 공학 아름다운 추억들을 가장 많이 남기던 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가의 모습입니다

 

 

넉넉치 못한 가정의 어린이들은 공휴일이나 학교마치고

공사장에 나가 중노동도 많이 하였습니다

 

 

어려운 친구네 집에 나무해서 쌓아주기도 하고

풋풋한 정이 많았던 시절이지요

 

 

학교마치고 소먹이로 염소 먹이로.........

 

 

손수 만든 연으로 누가 누가 높이 날리나~

연끼리 붙어서 줄끊기도 하고...

 

 

매년 5/5일 어린이 날이면 전국적으로 행사를 하였지요

"자라나는 어린이는 이나라의 보배! 라는 표어도 있었습니다

 

 

매년 경찰관 아저씨들 어린이 날이면 무척들이나 고생 하셨습니다

 

 

오토바이 묘기

 

 

일요일 날이면 학생들이 골목길 대청소를 하곤했지요..

어린이 애향단이라는 동아리가있었습니다

 

 

널뛰기 모습입니다 ..누가 누가 높이뛰나..

이젠 보기힘든 추억속으로 사라졌나봅니다

 

 

그네 뛰기

 

 

밀집 모자에 바닥없는 A형 텐트.....

참으로 추억속의 장면들입니다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길 거리에서 사탕을 팔고 있는 모습입니다

소 일거리도 없던 시절 이런 모습들은 길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골목을 누비며 "칼 갈아요~~~ 칼!

목이 터저라 소리치며 외치시던 모습입니다

 

 

먹고 살기 힘든때, 뜨거운 물 한주전자 보리밥이나 한술 말아서

아무곳에서나 배를 채우던 시절입니다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 와서 라이터 돌을 팔던 모습입니다

당시는 기름을 넣어서 사용하는 라이터 밖에 없어서

라이터 돌이 닳으면 사서 넣어야만 했습니다

 

 

이른 새벽 시장 골목마다 연탄불을 붙여

출근하는 상인들에게 팔아서 생계를 꾸리신 분들도있었습니다

 

 

곡식 수매 현장입니다,,가마니가 80킬로짜리입니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 김을 매던 우리 모두의 어머님이십니다

호미 한자루에 시름을 달래며 밭고랑에 피 땀을 흘리시며 살아오신 분들이시지요

 

 

이렇게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굳굳이 살아오신 분들과,

빡빡 머리 이 소년들도 어느덧 50을 넘기셨을것같습니다

다들 잘 살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위에 나오신 이분들은~

이미 새상을 등지신분들도 계실것이며...

조국 근대화를 자식들 위해 뼈골이 부서지도록 고생하신 분들이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풍요롭게 사는것도

다 이분들 덕이라 생각하며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 추억으로 가는 사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