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16년(1879) 8월 29일 "결성면 성곡리 박철동 잠방굴"이라는 곳에서 청주한씨 서원군 한명보의 후손인 부친 한응준과 모친 온양방씨의 차남으로 출생한
선생은 어릴때 이름은 유천(裕天), 본명은 정옥(貞玉), 불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 (卍海, 혹은 萬海)라 한다.
6세부터 성곡리의 서당골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9세에 문리를 통달하여 신동이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26세에 강원도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문에 입도하여 경악의 대가로 명승강사 가 되었다. 1910년에 일본이 주장하는 한일불교동맹등을 반대 철폐하고 33세에 만주로 망명 하여 이회영, 박은식, 김동삼등의 지사들을 만나서 독립운동을 협의하였다. 1월에 최린과 상의하여 독립운동을 적극 추진 할 것을 결의 하였으니 이것이 3.1 만세운동의 발단이 되었으며, 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추가보완하였다. 3.1운동 전후에 걸쳐 만년기 까지는 불교대전,불교 유신론,채근담강의, 님의침묵 등을 저작하고 유심지, 불교지를 발간하였다.
선생은 민족독립,불교유신,자유문학 의 3대 사상가로서 절의의 행적을 남기고 1944년 6월29일(음 5월 9일)서울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별세하였다.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불교대전》 《불교와 고려제왕(高麗諸王)》
등이 있다.
"결성면 성곡리" 한용운 생가지에는 생가복원에 이어 사당을 건립하고 안내판을 설치하였으며, 주변 정비사업을 계속 추진중에 있다.

◈만해 한용운 생가지(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2번지)
일제 식민 강점기에 독립운동가이며 승려이고 시인인 한용운선생께서 고종 16년에 태어난 곳이다. 1989년 12월 29일 충청남도기념물 제75호로 지정되었다.
1991년부터 한용운의 생가를 중심으로 주변지역을 사적화하기 위한 복원사업이 시작되었다. 생가는 앞면3칸, 옆면 2칸 규모의 초가인데 양옆으로 1칸을 달아내어
광과 헛간으로 사용하고 울타리는 싸리나무로 둘렀으며 바깥에 흙벽돌로 화장실을 만들었다.
이후 생가 좌측 뒤편에 사당과 삼문을 신축하였으며, 사당 전면에 기존에 있던 건물을 개축하여 관리사로 사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