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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위인 김좌진장군

천수만이무기 2009. 6. 16. 15:08

  

 김좌진(金佐鎭:1889~1930)

  
호는 백야요,고종 26년(1889) 음 11월 24일 "갈산면 행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8세때 우리 사회에 처음으로 노예해방의 첫 기록을 남겼다. 15세가 되던 해는 대대로 살아오던 80칸이 넘는 집을 내놓고
작은 집으로 옮긴 다음 호명학교를 설립하여 신학문을 배울 수 있는 길을 열었는데, 이것은 우리 지방에서 신학문을
배울 수 있는 첫 기록이다.

그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기호흥학회라는 장학단체를 설립하여 지방의 유망한 청년들을 선발, 서울 유학을 시키기도 하였다.
20세 때에는 이봉창과 같이 서울에 고아원을 설립하여 무의무탁 고아들을 양육하는 한편, 한성신보의 이사로 취임하였고,
관철동 대관원자리에 이창 양행과 신의주에 염직회사를 설립하였다.

31세가 되던 해에 서백리아에 출전중이던 일본의 가납연대 3,000명을 화 룡현 청산리로 유인하여 연대장 가납 이하
1,200명을 함몰시키고 천수백명 을 전상자로 만든 싸움이 저 유명한 1920년 10월 21에 있었던 청산리 작전 이다.
38세에는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취임하고 재만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추진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40세가 되던 해 군무서독변겸 북만군정서총사령, 한족총연합회 주석에 취 임하여 재만동포의 교육문제와 민생문제에
주력하는 한편,중국의 항일세력 과 연합전선을 결성하고 대일항전을 위하여 준비를 하던 중,1930년1월24일 하오 2시
중동 산시역부근 정미소에서 고려공산청년당원의 흉탄으로 일세의 풍운아 백야 김좌진 장군은 생의 장막을 내렸다.

홍성군에서는 1991년부터 김좌진장군생가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생가와 문간채, 사랑채를 복원하고 관리사 및 전시관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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