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한국 골프의 발달 본문

생활/골프

한국 골프의 발달

천수만이무기 2009. 10. 7. 18:48

  한국 골프의 발달

우리나라에 골프가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1887년 황실고문으로 와 있던 영국인들이

원산세관 내의 유목산 중턱에 6홀 규모의 코스가 만들어져 경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실질적 한국 골프의 시작은 1929년에 군자리 골프장(현재의 어린이대공원)이

개장되면서부터 이다. 영친왕은 군자리 골프장의 부지를 제공하였을 정도로

골프 애호가였으며 최초의 골퍼로 인정받고 있다. 당시 일반인들은 골프에 대해

알지 못하였으며, 주로 왕족과 외국인들이 주로 참여하였다.
 

우리나라 프로골퍼의 역사는 연덕춘 선수에서 출발한다. 1941년 연덕춘 선수가

전 일본 오픈 선수권대회에서 290타로 우승하였다.

연덕춘이 배출한 수많은 프로 선수들 중에 한장상이 1972년 일본 오픈에서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로 우승했으며, 1973년에는 김승학이 아시아 서킷

1차전인 필리핀 오픈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우승하였다.

또한, 1974년 조태운이 한국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황금기를 맞이했었다.

군자리 골프장은 광복이후 4년 만에 이승만대통령의 특별배려와 주한 미군의

장비 지원으로 1949년 5월에 복구되었으나, 1개월 만에 6․25로 다시 폐쇄되었다.

휴전 후 1954년 7월에 파 72의 국제 규모의 골프코스로 복구 되면서 한국의

골프는 본궤도에 올랐으나, 경제개발 국가정책에 의해 골프는 사치운동으로

분류되어 특별소비세가 부가되어 일부 특수층 인사만이 골프를 즐겼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러 골프는 스포츠의 한 영역으로 인식이 바뀌면서

골프장 건설도 활기 띄었다. 1982년 골프경기가 아시안 경기대회의 정식종목이

되면서 선수양성에 힘을 쏟았으며, 그 결과 1986년 남자부 단체에서

금메달을 획득 하였다. 그 후 아시아에서 골프 강국이 되었다.

 

특히 1998년 우리나라의 IMF체제의 경제 위기 속에 박세리 선수가 미국 여자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과 함께 국민들에게 경제 재건의 기틀의 희망을 갖게 하였다.

이후 김미현, 미셀위, 최경주, 박지은, 신지애 선수들이 미국 선수권

대회(LPGA, PGA)에서 우승을 하면서 세계무대에 한국 골프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박세리 선수는 아시아에서는 최초이고, 세계적으로 최연소

나이에 2007년 7월 6일 미국프로골프 명예의 전당에 입회하게 되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국가정책에서 골프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으며, 많은 시,군지자체에서 골프장 건설에 노력하고 있다.

'생활 > 골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페리얼 레이크(09.11.19)  (0) 2009.11.20
중원 CC(09.11.10)  (0) 2009.11.10
우리나라 골프의 발원지"군자리 골프장"  (0) 2009.10.07
내기 골프의 10도(道)  (0) 2009.10.05
원주 파크밸리(09.09.28)  (0) 2009.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