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평생 모은 돈 다 털어주고 본문
평생 모은 돈 다 털어주고,경비·매일먹는 반찬 보니.은퇴해도 허리 못 펴
- 지난달 서울의 한 대학 강당에서 경비 업무를 하고 있는 이모(61)씨는 두 아들 신혼집을 구해주느라 평생 모은 재 산 2억원을 다 쓰고, 한 끼 2900원 하는 학생식당 밥값이 아까워 매일 경비실에서 손수 밥을 지어 먹는다. /성형주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의 한 대학교 경비실. 경비원 이동철(가명·61)씨가 검은 봉지에 담아온 흰쌀 2인분을 손수 냄비에 안쳤다. 이날 점심, 저녁 식사용이다. "그냥 직접 지어 먹어요. 10년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아들 집 장만해줬더니 학생식당 밥값(2900원)도 부담스러워요. 그래도 아버지 노릇 했더니, 며느리가 고맙다고 매일 아침 김치를 챙겨줘요. 고맙죠."
그는 낡은 TV가 놓인 경비실(10㎡·3평)에서 끼니를 때웠다. 그는 오전 6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대강당 문을 닫은 뒤, 자정부터 텔레비전을 보고 잠깐 눈을 붙인다. 이튿날 새벽 6시에 퇴근해서 하루를 쉬고, 다시 오전 6시에 출근하는 나날이다. 경비실 TV는 채널이 4개밖에 안 나오고, 그마저도 화질이 좋지 않지만 그에겐 유일한 낙이다. "대강당에 혼자 있으면 나 같은 늙은이도 외로워요. TV 소리만 들어도 좀 낫죠."
그는 "여름은 그래도 좀 나은데, 가을엔 낙엽을 쓰느라 새벽부터 빗자루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대강당(3000㎡·900평)을 대청소한 날은 집에 가서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진다. 그는 "가끔 술 먹고 시비 거는 학생들도 있지만 자식 같아서 밉지 않다"면서 "주위에 아파트 경비로 취직한 사람들이 '아줌마들 잔소리에 못살겠다'고 하는 걸 보니, 학교 경비원이 훨씬 낫다 싶다"고 했다.
그는 원래 공기업 직원이었다. 퇴직금을 털어 사업을 하다 망한 뒤 이혼을 했다. 이후 10년간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일하며 악착같이 2억원을 모았다. 그 돈을 탈탈 털어 2010년에 장남(공기업 직원)을, 올 초 차남(벤처회사 직원)을 결혼시켰다. "남자가 전세방 하나는 구해야 아내 앞에서 체면이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준 돈으로 두 아들은 서울 관악구와 은평구에 연립주택을 각각 얻었다. 이씨 자신은 노모(90)의 집(82㎡·25평)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이씨는 "두 아들이 나보다 더 많이 배우고, 월급도 더 받지만, 그 애들이 저축하는 것보다 내가 이렇게 아끼고 사는 게 더 쉽다"고 했다. 그는 요즘 경비원 월급 150만원을 쪼개 매달 26만원씩 적금을 붓고 있다. 9년간 모아서 1억을 마련한 뒤 시골에 내려가는 게 그의 꿈이다. 그는 "그때까지 아프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비단 이씨뿐 아니었다. 취재팀이 만난 혼주들 중에는 다 큰 자식 집값 대느라, 쑤시는 허리를 두드리며 막일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살던 집을 팔고 이른바 '뒷방 늙은이'로 밀려나는 경우도 흔했다.
보일러 수리공 하는 남편과 두 아들을 키운 박미숙(가명·56)씨는 작년부터 일용직으로 잡초 뽑는 일을 하고 있다. 박씨 가족의 전 재산은 지금 사는 경기도의 반지하 월셋집 보증금(3500만원)이 전부다. 큰아들(30·회사원)은 3년간 연애했지만 집값이 없어 결혼 날짜를 못 잡고 있다. 박씨는 "남편이 하던 사업이 망해 저축 한푼 없는 처지인데, 아들이 자꾸 '요즘 다들 부모가 대줘서 장가가지, 자기 힘으로 신혼집 얻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해서 마음이 답답하다"고 했다.
아들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여자 친구가 집값 모으려고 도시락 싸들고 다닌다"고 말한 날, 박씨는 아들에게 미안해서 울었다. 잡초 뽑는 일을 시작한 건 그 때문이다. 박씨는 "일이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지만, 1년간 한푼도 안 쓰고 모으면 그래도 1000만원은 될 것 같다"고 했다. 최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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