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안중근 의사 순국 105주기(3/26) 본문
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대한 사형선고를 받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입으셨던 흰색 명주옷을 재현한 옷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세 발을 명중시킨 후에
만세를 불러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뤼순감옥으로 옮겨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고 1910년 2월14일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일사천리로 한 달 뒤인 3월26일 뤼순감옥에서 사형을 당하셨지요.
이때 안중근의 나이는 불과 31살이었고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또한 40대였습니다.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의 사형선고 소식에
짧고 단호한 편지를 남겼지요.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짧고도 단호하게 써내려 간 편지에는 안중근 의사의 정신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라에 대한 사랑과 자신을 걱정할 자식에 대한 사랑
의인으로서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편지입니다.
훌륭하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죄스러운 안중근 의사는
사형집행 전, 집행인이 마지막 소원을 물었을 때
이렇게 답하셨다고 합니다.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5분 동안 읽고 있던 책의 마지막 부분을 다 읽고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사가 남긴 애국시에는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큰 뜻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 오면
나는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 안중근 [1879.9.2 ~ 1910.3.26] -
'글모음 > 이런 저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금님의 해구신 ... (0) | 2015.05.02 |
---|---|
장례문화도 이제는 바꿔야 .. (0) | 2015.04.11 |
이제는 바꿔야 할 음주문화.. (0) | 2015.03.24 |
명아주대로 만든 지팡이 청려장(靑藜杖) (0) | 2015.03.18 |
아버지 조심하세요.. (0) | 2015.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