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화성 용주사 본문

사진첩/나들이

화성 용주사

천수만이무기 2017. 6. 17. 11:10

 

 

 

 

[화성] 용주사

 

본래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갈양사로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이다. 
854년(문성왕 16)에 창건하여 952년(광종 3)에 
소실된 갈양사(葛陽寺)의 옛터에 창건된 사찰이다.

1790년(정조 14)에 사일(獅馹)이 팔도 도화주(八道都化主)가 되어 
철학(哲學) 등과 함께 팔도 관민의 시전(施錢) 8만 7000여 냥을 거두어 
갈양사 옛터에 145칸의 사찰을 창건하였다. 

이 절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에 
명복을 빌어 주는 능사(陵寺)로 창건되었다. 

창건과 동시에 이 절은 전국 5규정소(五糾正所)의 하나가 되어 승풍(僧風)을 규정하였다. 
그 뒤 1900년에 용해(龍海)가 중수하였고, 1911년에는 30본산의 하나가 되어 
수원·안성·남양·죽산·진위·음죽·용인·고양·시흥 등에 있는 49개 사찰을 관장하였다.

1931년에 강대련(姜大蓮)이 중수하였고, 
1955년 사찰 정화 뒤에 조계종 제2교구 본사가 되었다. 

같은 해에 관응(觀應)이 불교 전문강원을 개설하였으며, 
1965년 대웅보전을 중수하였다. 

1966년 주지 희섭(喜燮)이 동국역경원(東國譯經院)의 역장(譯場)을 두었고, 
1969년 전강(田岡)이 중앙선원(中央禪院)을 설립하여 1975년 지장전을 중수하고, 
1977년 일주문을 세웠으며, 1981년 3층의 부모은중경탑을 세웠다. 
1985년 불음각(佛音閣), 1986년 중앙선원 건물을 지었다. 
1987년 대웅보전을 중수하고, 1988년 호성각을 지었다. 
1993년 천불전을 짓고 만수리실을 개축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790년에 건립한 용주사 대웅보전이 
1983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지장전(地藏殿), 시방칠등각(十方七燈閣), 범종각, 법고각(法鼓閣), 봉향각(奉香閣)과 
1983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천보루, 나유타료(那由他寮), 만수리실(曼殊利室), 
삼문각(三門閣), 일주문, 수각(水閣), 동별당(東別堂) 등이 있다. 

또 문화재로는 1964년 국보로 지정된 용주사 동종과 
2012년 보물로 지정된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 
1972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금동향로, 청동향로, 용주사 상량문, 
전적수사본, 용주사 병풍, 용주사 대웅전후불탱화 등이 있다.

 


 

 


 

 

 

 

 


 


 


용주사에 홍살문과 삼문이 있는 이유는 정조께서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용주사를 창건하고 호성전(護聖殿)을 건립하여 아버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다.


 


 


삼문

 


 

 

 

 

 


 


 


 


 


천보루


 


세존사리탑


 


 


 


불음각
 


 


천보루

 

 

 

 


대웅보전

 


 


나유타료 (승당)

 


 


만수리실 (선당)

 


 


 


 


 


 


천보루

 


 


나유타료(승당)

 


 


만수리실

 


 


 


 


호성전은 사도세자, 정조대왕, 경의황후(혜경궁 홍씨), 효의왕후 김씨(정조의 왕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지장전

 


 


천불전

 


 


범종각

 


 


용주사동종(국보 제120호). 신라 종 양식을 보이는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범종으로, 높이1.44m, 입지름 0.87m, 무게 1.5톤이다.

 


 


종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용통이 있고,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두 발로 힘차게 몸을 들어 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어깨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있는데, 아래 위 서로 어긋나게 반원을 그리고

그 안에 꽃과 구슬무늬를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다.
 


 


4곳의 유곽 안에는 9개의 돌출된 연꽃 모양의 유두가 있는데, 남아 있는 것은 1곳 뿐이다.

 


 


종의 몸체 앞뒤에는 비천상을,



 


좌우에는 삼존상(三尊像)을 두었고,
 


 


4곳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두었다.

 


 


종 몸체에 통일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조성된 것이라는 후대에 새긴 글이 있으나,

종의 형태와 문양이 그 시대와 일치되지 않아 학계에서는 고려 전기의 종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강대종사사리탑

 

 

'사진첩 > 나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화도 고구마캐기 체험  (0) 2017.10.14
구리 한강공원 코스모스  (0) 2017.10.05
양수리 세미원  (0) 2017.05.26
유채꽃  (0) 2017.05.16
광릉 수목원, 봉선사  (0) 2017.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