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빗속에 화악산오르다 본문
화악산
가평군 북면 화악리와 적목리에 자리한 화악산(1,468.3m)은 태백산맥의 지맥인 광주산맥에 솟아 있으며,주위에 응봉·명지산·촉대봉·중봉 등이 있다.도내에서 가장 높으며, 산세가 웅장하다. 사방이 급경사를 이루며,동·서·남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물이 가평천의 상류를 이루어 북한강에 흘러든다.일대는 참나무·낙엽송 등의 수림이 울창하며,중봉리 고개 왼쪽에 발달한 계곡에는 크고 작은 소(沼)와 폭포가 있다.현재 정상 일대가 출입금지구역으로 설정되었으며,중간말-중봉-1,142m 고지-건들내-중간말에 이르는 등산로가 있다.동쪽 산록의 실운현은 응봉과의 안부에 해당하며,강원도 화천과 이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다.화천군 사내면 사창리에는 6·25전쟁 때 중공군의 격퇴를 기념하여 세운 화악산전투 전적비가 있으며, 그밖에 천도교 기도원이 있다. 남서쪽 산록의 도로변을 따라서 취락이 분포한다.
측량기술이 없던 옛날 선조들은 화악산을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정중앙으로 생각해 왔다.그래서 화악산 정상을 가운데 중(中) 자를 써서 중봉(中峰)으로 불러왔다. 이웃나라 중국(中國)이 자기네가 지구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발상인 것이다. 우리나라 지도를 볼 때 전남 여수에서 북한 중강진으중강진으로 이어지는 선이 국토자오선(동경 127도 30분)이다. 그리고 북위 38도선을 그으면 두 선이 만나는 곳이 바로 화악산 정상이다. 평북 삭주에서 경남 울산으로 이어지는 선과, 백두산에서 한라산으로 이은 두 선의 교차점도 화악산에서 만나는 것이 신기하다. 운악산, 송악산, 관악산, 감악산과 함께 경기 오악으로 쳤던 화악산은 풍수상으로도 조선의 심장에 해당하는 대길복지 명당으로 전해오고 있다. 해좌승람 산경표에는 화악산(花岳山)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화천·가평 고을에서 산제(山祭)를 올린 명산이라 기록해 놓았다.
어제 저녁때 부터 내리던 비가 밤에는 월드컵 축구 한국 대 우루과이전 거리응원까지
방해해서 결국 2대1로 지게하더니 아침까지도 그치질 않고 구질구질 계속내린다
오늘은 화악산을 산행하기로 한 날인데 창밖에 부슬비가 갈등을 하게 만든다
햇빛이 없으니 더웁지는 않아 좋겠다 생각하고 오전에 비가 갠다는
일기예보를 믿으며 아침 상을 물리고 그냥 빗속에 출발했다
대성리 청평을 지나 가평 북면 목동리에서 우측으로 계속 올라가 화악산 중턱 화악 터널 입구 못미쳐
좌측 비포장으로 조금더 들어가 공군 부대 입구 일반차량 출입 통제지역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 11시반이다 짙은 안개속에 가랑비는 계속 시야를 가린다
한손엔 스틱 한손엔 우산을 들고 숲사이 등산길로 접어들었다
한참을 오르다보니 빽빽한 관목사이로 우산은 이미 무용지물이되고
옷은 다젖어 등짝이 축축해진다
서서히 우산이 짐이되기시작한다 아예접어서 스틱대용으로
미끄러운 땅을 짚으며 계속 정상을 향해올랐다
사방은 안개비로 아무것도 안보인다 이렇게 빗속에 숲속을 헤치고 1시간반
비에젖은 언덕길이 미끄러워 힘이든다 드디어 화악산 중봉에 올랐다
날씨 때문에 멀리 볼수는 없었지만 꼭대기에 올라서있다는 마음은 즐거웠다
잠시 숨을 고르고 하산하여 주차장에 내려오니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준비해간 간식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오후3시 출발 화악터널을 지나 사창리를 돌아
명지산 계곡으로 다시 목동 삼거리에서 남이섬 쪽 강변을 타고 청평으로해서 대성리,
대성리에서 왕만두 하나씩 사먹고 마석을거쳐 집에오니 저녁 7시가넘었다
피곤도하지만 오늘도 즐거운 산행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화악산 중봉에서...
비구름에 가려진 산허리
오는길에 남이섬을 건너다보며...
비에 젖어 바지가 달라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