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황혼의 전쟁<1> 60~70대 부부 "말만 하면 싸움…" 본문
100세 시대의 그늘, 60~70대 부부 ‘황혼의 전쟁’
주부 이모(72)씨는 최근 '제2의 권태기'라고 불릴 만큼 남편(74)과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퇴직한 건 15년 전. 처음 4~5년은 함께 여행 다니며 큰 갈등 없이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함께할 일이 없어졌다.
세 자녀가 모두 결혼하자 집에 둘만 있는 시간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씨는 복지관·주부대학을 나가며 활동반경을 넓혔다. 반면 '복지관=경로당'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은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고 있다. 이씨는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남편의 잔소리가 심하다.
밖에 나갔다가도 집에 들어오기 싫어진다. 집에 아주 귀한 애완견이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씨 부부는 각 방을 쓴 지 6년째, 분가한 자녀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 이씨는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성격 차이'가 너무 심하다. 날마다 다투고 있으니 지옥이 따로 없다. 앞으로 갈등이 더 심해질 것 같아 걱정"이라며 부부 관계 상담소를 찾았다.
#공무원 출신인 정모(76)씨도 아내 한모(72)씨와 '한 지붕 별거'생활 10년째다. 정씨는 연금으로, 아내는 가게 임대료를 받으며 돈 관리도 각자 한다. 텔레비전도 각 방에서 따로 본다. 아내가 남편에게 해주는 건 밥상을 차려주는 정도. 젊을 때부터 남편 정씨는 가부장적인 성격이었다.
아내에게 '끼어들지마'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한씨는 젊었을 땐 이런 말을 참고 견뎠다. 한데 이제는 달라졌다. 쌈짓돈을 모아 가게를 차리면서부터 목소리가 커졌다. 정씨가 무슨 말만 하면 같이 소리를 지르며 싸우기 일쑤다. 아들·며느리·손자·손녀 등 10여 명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정씨는 "무슨 말을 해도 싸움이 되니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는 게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고령화 시대의 그늘은 질병과 빈곤만이 아니다. 부부 관계도 그중 하나다. 평균 수명이 늘고 자녀가 독립하고 부부만 사는 '빈 둥지 기간'이 늘면서 65세 이상 노년층 부부가 겪는 갈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100세 시대, 그리고 '빈 둥지 20년' 시대를 맞아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10년 인구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542만 명. 5년 사이 노인 인구가 24% 급증했다. 노인 인구 비율은 11.3%로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두 자리 숫자를 기록했다.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고령 사회(14~20%)'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다. 주목할 것은 고령화가 급속화되면서 부부가 함께 생존하는 기간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기준 전체 부부 가구에서 노인 부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39%인 것으로 나타났다. < 표 참조 >
한경혜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지난해 여성정책연구원이 '100세 시대 가족'을 주제로 연 여성정책포럼에서 "(베이비붐)이전 세대는 자녀를 여러 명 낳고 수명이 짧아서 자녀가 독립한 뒤 남편과 아내 단둘이 사는 기간이 1.4년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자녀, 수명 증가로 베이비붐 세대(55~63년에 출생한 세대)의 경우 부부만 사는 기간이 19.4년 이상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 교수는 "자녀가 떠나고 부부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수명이 늘수록 부부 갈등과 이혼이 증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최근 발표된 서울시 정보화기획단의 '2011 혼인·이혼통계'는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결혼생활 20년 이상의 황혼 이혼이 4년 이하 신혼이혼을 추월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2011년 70대 부부의 이혼상담 건수는 모두 118건이었다. 전체의 2.28% 수준이지만 4~5년 전만 해도 70대는 아예 건수를 셀 수 없었다. 100세 시대의 또 다른 그늘, '황혼의 전쟁'이다.
중앙일보 이은주 2012.06.02
세 자녀가 모두 결혼하자 집에 둘만 있는 시간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씨는 복지관·주부대학을 나가며 활동반경을 넓혔다. 반면 '복지관=경로당'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은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고 있다. 이씨는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남편의 잔소리가 심하다.
#공무원 출신인 정모(76)씨도 아내 한모(72)씨와 '한 지붕 별거'생활 10년째다. 정씨는 연금으로, 아내는 가게 임대료를 받으며 돈 관리도 각자 한다. 텔레비전도 각 방에서 따로 본다. 아내가 남편에게 해주는 건 밥상을 차려주는 정도. 젊을 때부터 남편 정씨는 가부장적인 성격이었다.
아내에게 '끼어들지마'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한씨는 젊었을 땐 이런 말을 참고 견뎠다. 한데 이제는 달라졌다. 쌈짓돈을 모아 가게를 차리면서부터 목소리가 커졌다. 정씨가 무슨 말만 하면 같이 소리를 지르며 싸우기 일쑤다. 아들·며느리·손자·손녀 등 10여 명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정씨는 "무슨 말을 해도 싸움이 되니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는 게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고령화 시대의 그늘은 질병과 빈곤만이 아니다. 부부 관계도 그중 하나다. 평균 수명이 늘고 자녀가 독립하고 부부만 사는 '빈 둥지 기간'이 늘면서 65세 이상 노년층 부부가 겪는 갈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100세 시대, 그리고 '빈 둥지 20년' 시대를 맞아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10년 인구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542만 명. 5년 사이 노인 인구가 24% 급증했다. 노인 인구 비율은 11.3%로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두 자리 숫자를 기록했다.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고령 사회(14~20%)'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다. 주목할 것은 고령화가 급속화되면서 부부가 함께 생존하는 기간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기준 전체 부부 가구에서 노인 부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39%인 것으로 나타났다. < 표 참조 >
최근 발표된 서울시 정보화기획단의 '2011 혼인·이혼통계'는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결혼생활 20년 이상의 황혼 이혼이 4년 이하 신혼이혼을 추월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2011년 70대 부부의 이혼상담 건수는 모두 118건이었다. 전체의 2.28% 수준이지만 4~5년 전만 해도 70대는 아예 건수를 셀 수 없었다. 100세 시대의 또 다른 그늘, '황혼의 전쟁'이다.
중앙일보 이은주 201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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