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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1)..

천수만이무기 2012. 3. 20. 13:40

 

 

 

호텔들, 불법 강매로 폭리

찬성하건 반대하건 호텔 결혼식은 선택지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본지가 결혼 정보회사 선우에 의뢰해 전국 신혼부부 310쌍을 조사한 결과 다섯 쌍 중 한 쌍(22.9%)이 호텔에서 결혼했다고 했다.

한국웨딩학회 김인옥 회장(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은 "어느 나라에나 고급 서비스는 있다"면서 "호텔 결혼식이 비싼 것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비싼 값을 받으면서 소비자가 믿고 있는 것만큼 품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했다.

본지가 서울시내 특1급 호텔 21곳을 전수(全數) 조사한 결과 모든 호텔이 소비자 의사와 무관하게 다음 세 가지를 강권했다.

①반드시 호텔 직영 꽃집 혹은 호텔이 지정한 꽃집을 이용하고

②꽃 장식을 줄이거나 아예 안 해도 최저 기본비용(호텔별로 380만~2000만원)은 꼭 내야 하며

③외부 업체는 선택할 수 없다고 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한 호텔은 "고객 어머니가 플로리스트라서 딸을 위해 직접 꽃을 꽂아주고 싶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했다.

취재팀이 녹취한 서울 특1급 호텔 매니저들의 말은 법에도, 상식에도 어긋났다. 꽃뿐 아니라 음료·폐백음식까지 필수사항으로 묶어놓은 호텔이 많았다. 와인이 필수인 호텔이 18곳, 폐백실을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호텔이 11곳, 폐백음식까지 필수인 곳이 2곳이었다. "토요일에는 가장 저렴한 메뉴는 선택할 수 없다"는 호텔이 4곳, 사진이 필수인 곳도 2곳 있었다.

이처럼 A제품을 판매하면서 B제품까지 사라고 강권하는 걸 '강제 끼워팔기'라고 한다. 공정거래법은 소비자 권익을 해치고 시장 질서도 왜곡한다며 강제 끼워팔기를 금지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예식장 임대 서비스와 꽃 장식 서비스는 엄연히 별도 상품이기 때문에 두 가지를 한데 묶어 반드시 함께 구입하게 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 번도 단속한 적은 없다. "신고가 들어오지 않아 몰랐다"고 했다.

 

 

[호텔 예식 관계자들의 말·말·말]

 

"꽃장식 안 하는건 취향이지만… 예식 가격은 그대론거 아시죠?"
"와인은 필수죠, 양식에 맥주는 드레스 입어놓고 운동화 신는 꼴"
"메뉴판엔 있어도 토요일 예식엔 저렴한 코스 주문 안 받아요"

 

◇꽃

"꽃은 저희 직영 숍에서 하셔야 해요. 저희는 검증된 분들이 해 드려요." (JW메리어트호텔)."

"꽃 가격은 고정이에요. 여기서 추가될 수는 있죠."(워커힐호텔)

"꽃 장식을 간소하게 해 드리는 건 가능해요. 그래도 가격은 달라지지 않는 거 아시죠? 취향은 얼마든지 맞춰 드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가격을 낮추는 건…(안 된다는 뜻). 2000만원대에서 맞춰달라고 하면 맞춰 드려요." (신라호텔)

"(외부에 꽃 장식을 맡기고 싶다고 하자) 다들 한 번씩은 '아는 플로리스트가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안 돼요." (메이필드호텔)

"저희가 꽃을 필수항목으로 거는 건, 웨딩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에요."(르네상스호텔)

"○○호텔이 우리보다 비싸죠. 그런데 우리는 그쪽처럼 꽃으로 바르지 않아요. 차분하게 해서 보수적인 분들, 이를테면 공무원 같은 분들이 자주 오세요. 누구라곤 말 못하지만 지위가 있어서 화려하게는 못하는 분들이 아는 사람은 알게 잘하고 싶을 때 오시죠."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외부 플로리스트를 쓰신다고요? 그렇게는 안 되시고요. 그렇게 안 하시는 게 더 나을 거예요." (그랜드힐튼호텔)

◇이것도 필수, 저것도 필수

"사진도 필수예요. 원판 앨범을 저희 호텔에서 하셔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무래도 외부 스튜디오에 맡기면 분위기를 잘 못 읽을 때가 있어요. 우리 측에서 사진을 찍어 드릴 때 전체적으로 어우러지는 게 달라요."(호텔리츠칼튼)

"메뉴에 와인이 필수로 들어가야 해요. 양식에 맥주는 좀 그렇잖아요? 드레스를 입었는데 운동화 신으면 이상하니까 와인이 꼭 들어가는 거예요. 어떤 와인이 나오냐고요? …. (병당 5만5000원으로 가격은 정해져 있지만 어떤 제품인지는 모르겠다며)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호텔롯데월드)

"폐백 음식은 가급적이면 저희 호텔에서 하시는 게 좋아요. 굳이 다른 데서 하실 필요가 없고 기왕 여기서 예식 하실 거, 최고급으로 좋은 걸로 하시는 게 좋잖아요. 괜히 폐백 음식 밖에서 가져왔다가 좀 안 좋고 그러는 것보다는 저희가 추천해드리는 쪽으로 같이 하시는 게 좋고요. 꼭 여기서 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건 아니지만 일단은 외부 음식은 반입금지입니다." (워커힐호텔)."

◇저렴한 메뉴는 고르지 마라…고객 따라 들쭉날쭉한 가격

"여러 가지 메뉴가 적혀 있지만, 그중 가장 저렴한 메뉴는 토요일에는 선택하실 수 없는 거 아시죠?" (그랜드앰배서더호텔·호텔리츠칼튼·JW메리어트호텔·임피리얼팰리스호텔)

"가장 기본으로 먼저 견적을 내볼게요. 추후에 붙는 것은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합니다. 물론 비싸지는 거죠. 하지만 저희가 잘 봐드릴 수 있고요. 상담이 그래서 필요한 거예요. 그리고 와인 반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요. 우리도 해주고 싶지만, 그러면 선례가 생기기 때문에 안됩니다." (임피리얼팰리스호텔)

"(○○호텔에 먼저 다녀왔다고 하자) 그보다 더 할인 가능해요. 예식 중계하는 비용은 공짜로 해 드릴 수도 있고요, 가예약하시면 더 잘해 드릴 거예요. 저희가 지금은 기본으로, 할인 없이 보여 드린 거예요. 나중의 기대감을 위해서. 나중에 할인된 거 보면 기분 좋으시잖아요." (서울프라자호텔)

"저희가 리모델링하고 사실 많이 고급스러워졌고 가격도 올랐는데 딱 하시고 나면 '아, 이래서 여기서 웨딩을 많이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웨스틴조선호텔)

 

 

◇서울 특1급 호텔들 '스테이크'의 불편한 진실..

 

"좋은음식 대접하려 호텔 택했다"지만 수백명분 스테이크, 알바생이 만들어…
"실수로 소금 대신 설탕 쳐도 바쁘니까 그냥 다 내가" 다른 호텔도 사정 마찬가지

'후추를 입힌 호주산 쇠안심구이에 적포도주 소스.'

서울 강북의 한 특1급 호텔 결혼식 피로연 메뉴다. 1인당 8만5000원짜리로, 호텔은 "실력 있는 요리사들이 최고급 재료를 사용해 '직접' 굽는다"고 했다. 하지만 작년 12월~올 2월 이 호텔에서 일한 대학생 박재영(가명·21·사진)씨는 "바쁠 땐 저 같은 아르바이트생이 굽는다"고 했다.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햄버거 패티 굽듯이 스테이크를 죽 늘어놓고 뒤집었어요. 실수로 소금 대신 설탕을 쳤는데 (서빙 담당 직원들이) 바쁘니까 그냥 다 내갔어요."

서울 특1급 호텔 21곳 피로연 메뉴는 호텔에 따라 6만500~12만원에서 시작한다. 본지가 만난 신랑·신부·혼주들 상당수가 "애써 와준 하객들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고 호텔을 택한 이유를 댔다. 하지만 이런 바램과는 달리 엉터리로 음식을 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호텔에서 결혼할 때 하객들이 스테이크가 맛있다고 감탄했어요. 그런데 같은 호텔 다른 결혼식에 가니 맛이 영 아니었어요. 알고보니 시아버지(호텔 VIP 회원)가 미리 주방장에게 팁을 주며 '개혼(開婚)이니 잘해달라'고 부탁했데요. 해당 주방장이 '단골이 부탁할 땐 호텔 스태프가 하고, 평소엔 아르바이트 쓴다'고 했어요.." (박정현·가명·34)

"수백명분 음식을 한꺼번에 내다보니 아르바이트생을 쓰지 않을 수 없거든요."(특급호텔 주방장 출신 A교수)

작년 12월 또 다른 특급호텔에서 시급 4700원 받고 일한 김영주(가명·21)씨는 "원칙적으로 경력이 쌓여야 요리에 손댈 수 있지만, 연회장 주방은 워낙 바빠 실습생이건 아르바이트생이건 시키는 일은 가리지 않고 다 한다"고 했다.

한국호텔관광전문학교 이흥주 교수는 "비싸다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비싼 값을 받으면서 제대로 된 음식이 안 나오는 게 문제"라고 했다.

 

일반 주문하면 40만원짜리 케이크… 결혼식 때 주문하면 100만원 받아

필수항목은 또 있다. 서울 시내 특1급 호텔 21곳 가운데 16곳이 반드시 호텔 베이커리에서 웨딩케이크를 주문해야 한다고 했다. "신랑 신부가 결혼식 마치고 퇴장했다가 다시 입장했을 때, 하객들에게 2부 행사(피로연) 시작을 알리려면 꼭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안 해도 되느냐"고 물어도 호텔 직원들은 "하셔야 한다" "남들도 다 한다"는 대답을 반복했다.

웨딩케이크 가격은 50만~120만원이었다. 케이크 값이 100만원 넘는 호텔 6곳을 골라 해당 호텔 베이커리에 똑같은 크기, 똑같은 재료로 견적을 받아봤다. 무려 60만원까지 가격이 차이났다. 신라호텔은 120만원짜리 웨딩케이크와 똑같은 케이크를 일반주문하면 90만원 받는다고 했다. 코엑스인터콘티넨탈호텔,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 그랜드하얏트호텔은 웨딩케이크면 100만원, 일반 주문이면 40만원을 받았다. 워커힐호텔과 롯데호텔서울(소공동)은 "웨딩케이크 크기의 케이크는 일반 주문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가격 차이가 벌어진 호텔 베이커리 직원에게 "방금 웨딩 상담을 하고 왔는데, 왜 똑같은 케이크 값을 다르게 받느냐"고 묻자 직원은 말문이 막혔다가 멋쩍게 대답했다. "웨딩은 스페셜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