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2).. 본문
예비 며느리가 임신했단 말에 신랑 어머니는…
경기도 광명 에 사는 김일영(가명·28)씨는 6년 사귄 동갑내기 신부와 작년 4월 결혼했다. 둘 다 모아놓은 돈이 없었지만 신부가 덜컥 아이를 가져 예식을 서둘렀다.
고물상 하는 김씨 아버지는 아파트(126㎡·38평) 한 채 가진 중산층, 용달차 운전하는 사돈은 전셋집(83㎡·25평)에 사는 서민이었다. 상견례 자리에서 신부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도와줄 형편이 못 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신랑 아버지 혼자 5000만원을 대출받아 전셋집(60㎡·18평)을 얻어줬다.
↑ [조선일보]
김씨는 "이때부터 '체면의 치킨게임'이 시작됐다"고 했다. 양가 모두 '남 눈치 보지 말고 간소하게 하자'는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남 눈치보다 더 무서운 게 '사돈 눈치'였다.
예비 며느리가 임신한 게 미안해 신랑 어머니가 70만원짜리 핸드백과 40만원짜리 정장을 사줬다. 핸드백을 받은 며느리가 부모를 다그쳐, 신부 부모가 신랑 어머니에게 60만원짜리 정장과 50만원짜리 시계를 보냈다.
신부 부모가 남들이 다 한다는 이유로 이불·반상기·은수저 세트에 현금 500만원을 넣어 보내자, 예단을 받은 시어머니도 마음이 불편해 결국 며느리에게 백금 반지·귀걸이·목걸이를 사주고 현금 200만원을 돌려보냈다. 신부 어머니는 적금 깨서 신혼여행비 대고, TV·냉장고·침대·장롱을 사줬다. 그러면서도 "남들만큼 못 해줘 미안하다"고 죄인 같은 얼굴을 했다.
본지가 여론조사회사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최근 2년간 자녀를 결혼시킨 혼주 210명에게 "좀 부담스럽더라도 자녀는 번듯하게 결혼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10명 중 8명이 "그렇지 않다"고 했다(76.2%). 하지만 질문을 바꿔 "실제로 쓴 비용은 부담스러웠느냐"고 묻자 10명 중 6명이 "부담되더라"고 했다(59.0%). 노후자금을 털거나 대출받는 일 없이, 있는 돈으로 간소하게 식을 치러야 한다는 데 마음으로 다들 동의하지만, 실천은 안 되고 있단 얘기다.
본지가 결혼정보회사 선우에 의뢰해 전국 신혼부부 310쌍을 상대로 결혼과정에서 겪은 갈등을 조사해보니, 최근 5년간 갈등이 줄어든 항목들과 갈등이 늘어난 항목들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우선, 결혼비용이 뛰는 가장 큰 '원흉'이 집값이지만 신혼집 마련을 둘러싼 갈등은 오히려 크게 줄어들었다. 살림살이 마련하는 데 들어가는 혼수 비용도 갈등 빈도가 고만고만했다. 반면 약혼식과 함들이·예물과 예단·주례 선택·결혼식 비용을 둘러싼 갈등은 증폭됐다.
유성렬 한국결혼문화연구소장( 백석대 교수)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항목에 대해서는 갈등이 줄고 체면치레상 필요한 항목에 대해서는 갈등이 늘어났다"면서 "특히 신혼부부 당사자가 걸린 문제보다 양가 부모가 걸린 문제에서 자꾸 갈등이 늘어나는 것이 한국 사회 특유의 현상"이라고 했다.
김씨 부부의 경우, 양가가 소통하지 못해 쓸데없이 쓴 돈이 지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부부는 둘 다 고졸로, 신랑은 휴대전화 공장에서 월 200만원을 벌고, 신부는 무역회사 경리로 월 140만원 번다. 양가 사이에 물건이 오갈 때마다 "그 돈 차라리 실용적인 데 쓰자"고 했지만, 모아놓은 돈도 없이 부모 힘으로 결혼한 처지라 그때마다 "뭘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고 야단만 맞았다. 갓난아기 아빠가 된 김씨는 "결국 서로 눈치 보느라 남들 하는 품목 다 한 것 같다"면서 "아기를 키우는 요즘 그때 그 돈이 너무 아쉽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수혜 기자 201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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