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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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과 마포나루이야기

천수만이무기 2014. 4. 2. 21:16

 

 

 

 

 한강은 국토를 감싸고 돌고 있는 게 마치 허리 띠같다고 해서 대수(帶水)라고 불리웠다.

고려 현종이 거란족을 물리친 강감찬 장군의 공을 치하하는 자리에서 한강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다.

광나루에서 양화진까지는 경강(京江)이라고 불리웠다. 오늘날 한남동 한강진 부근의 강을 한강이라고 했다.

이곳은 마포강이다. 세 개의 포구(三浦)를 뜻하는 삼개에서 나왔다고 한다.

서호(서강) 마호(마포강) 용호(용산강)를 예로부터 삼개라고 했다.여기서 마포가 유래하였다고 한다.

 

 

 마포는 항구이다.

서해를 통하여 유입되는 각종 물산이 집중하는 상업도시였다.

소금 생선이 많이 거래되는 경강상인(江商)의 집단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새우젖 장사꾼은 마포상인의 상징이었다. 새우젖 장사꾼은 이마가 몹시 까맣게 탔다고 했다.

이른 아침 새우젖을 팔러가는 마포상인들은 해를 안고 도성으로 들어갔다.

물건을 다 팔고 도성을 떠날 때는 또 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소금은 마포항에서 많이 거래되는 대표적인 물건이었다. 염리동에서 그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염리(鹽里)’는 소금을 파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해 유래한 지역명이다.

염리동과 대흥동에는 큰 소금창고가 있었다.

서해로부터 들어오는 소금배는 마포항에서 부렸다.

소금(Salt)의 어원은 라틴어 'Sal'에서 유래 하였다.
한자인 소금 염(鹽)은 국가의 권력을 의미한다.
봉급을 의미하는 영어인 샐러리(Salary)은  소금(Salt)에서 어원을 찾는다.
로마시대에 공무원의 급여를 소금으로 지급한데서 기원한다.
소금으로 봉급을 받던 군인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병사(Soldier)가 유래하였다.
샐러드(Salad)는 채소에 소금을 뿌린 음식이라는 의미이다.
새우젓에는 오지그릇 독이 반드시 필요했다.

오지그릇으로 구어낸 옹기마을 동막(東幕)도 마포항 근처에 있었다.

 

 

마포항 앞에 있는 밤섬이다.

마포의 경강상인들이 투자하면서 밤섬은 우리나라 최대의 조선소로 급성장한다.

밤섬에서 배를 짓는 배목수의 솜씨는 국내외에서 알아주는 명장들이었다.

밤섬은 한때 1천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살며 제법 거대한 상권을 형성하였다.

정조 때는 노들나루터에 설치하는 배다리 공사에 배를 제공하여

경강상인들이 시전상인들을 누르고 조선 제일의 상권을 행사하는 데 단단히 한몫을 한다.

서해에서 마포항을 지나 한강진까지 운항하는 배는 해운용 수하선(水下船)였다고 한다.

수하선은 물에 잠기는 배 밑바닥이 뾰죽하게 생겨 거센 파도나 밀물에도 잘 견디게 제작되었다.

서해에서 밀려드는 밀물은 한강진 부근까지 치고 들어가 이 일대 한강에서는 수하선이 운행되었다고 한다.

 

 

 도성 서쪽에 마포항이 있다면 동쪽에는 뚝섬이 자리하면서 제몫을 했다.

뚝섬은 섬이 아니다. 한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면서 이 지역을 감싸고 지난다.

중랑천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지나면서 두뭇개부근까지 역시 이 곳을 감돌고 있다.

그 모양이 마치 섬처럼 생겼다고 해서 뚝섬이라고 한다.

뗏목으로 실려온 각종 목재는 뚝섬과 두뭇개 일대에 널려 있었다.

뚝섬은 땔감과 미나리 등 채소가 유명하였다.

미나리 장사꾼은 뚝섬 상인 그 자체였다.

뚝섬 상인들은 목덜미가 아주 까맣게 탔다고 한다.

이른 아침 도성으로 물건을 팔러갈 때 그들은 해를 등지고 갔다.

물건을 다 팔고 도성을 나올 때도 해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뚝섬 상인들은 목덜미가 까맣게 타서 이마가 까만 마포 새우젓 상인과 구별되었다고 한다.

 

 

뚝섬 한강공원에 설치한 뚝섬 유래비다.
뚝섬은 한강과 중랑천으로 둘러싸인 살곶이벌(箭串坪) 일대를 말한다.
사실은 독 또는 둑(纛)과 관련돼서 나온 지명이다
둑(纛)이란 무신(武神)을 상징하는 치우천왕(蚩尤天王)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큰창에 소의 깃털을 꽂아 만들었다.
매년 봄 경칩과 가을 상강때 그리고 왕이 군대를 열무하거나 출병을 할 때
이곳에 둑기(纛旗)를 세우고 둑제(纛祭)를 지냈던 곳이라 하여 뚝섬으로 불리게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도 둑제를 지냈다고 난중일기에 쓰고 있다.

뚝섬 이름에는 두 가지 유래가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 때부터 임금의 사냥 장소였다는 데서 뚝섬의 유래를 찾는다.
태종에 얽힌 사연도 갖고 있다.
1차 왕자의 난 뒤 함흥에 칩거하던 태조가 서울로 돌아오자 태종은 뚝섬으로 맞으러 나갔다.
태조는 태종을 보자 화가 치밀어 화살을 쏘았으나, 태종이 급히 피해 화살이 차일 기둥에 꽂혔다.
‘화살이 꽂힌 곳’이란 뜻의 살곶이벌(전관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태조∼성종 때까지 100여년 동안 임금이 직접 이곳에서 사냥한 것이 151차례나 되었다고 한다.
임금이 나오면 으레 그 상징인 독기(纛旗·소꼬리나 꿩꽁지로 장식한 큰 깃발)를 꽂았다.
이곳이 한강과 중랑천으로 둘러싸인 섬같다고 해서 ‘독기를 꽂은 섬’이란 뜻에서
‘독도(纛島)’라 불리다 ‘뚝섬’으로 소리가 바뀌었다고 전한다.
태조와 웃 광나루를 통해 도성으로 가거나 도성에서 광나루를 통해 여주 충주 부산으로 갈 경우
한양대 앞을 지나는 중랑천을 건너야 한다. 이 중랑천에 놓인 살곶이 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이 다리는 길이 78m, 너비 6m로 조선시대 가장 긴 돌다리였다.

또 창덕궁 금천교에 이어 조선에서 오래된 다리다.
뚝섬 일대는 국립 말 목장으로 주변은 목장성 아차성으로 둘렀다.
이 살곶이벌은 국왕이 참관하는 군사훈련장으로도 유명하였다.
뚝섬에는 1954년 우리나라 최초의 경마장도 들어섰다.
경마장에는 전국에서 돈푼깨나 만지는 이들이 몰려들어 성시를 이뤘다.
89년 과천에 경마장이 건설되면서 뚝섬 경마장은 문을 닫았고,
대신 뚝섬 골프장이 건설됐다가 2004년 4월 역시 문을 닫았다.

 

 

 

뚝섬나루는 강원도 충청도에서 한강을 타고 오는 물산이 집결되는 곳이다.

뚝섬은 뗏목으로 싣고오는 목재와 땔감이 아주 유명했다고 전한다.

이웃 두뭇개 앞 동호까지는 강에서만 운항하는 수상선(水上船)이 다녔다.

수상선은 배의 밑바닥이 뗏목처럼 평평하다.물살이 센 바다에서는 곧 전복된다.

밀물이 드세게 치고오는 한강진까지 서해에서 온 수하선(水下船)과 동호에서 서로 물산을 교환했다고 한다.

 

 

사라졌던 저자도(楮子島)가 살아나고 있다.

서울 옥수동과 압구정동 사이  한강에는 저자도가 있었다.

닥나무가 많아 저자도(楮子島)로 불렸던 섬이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인해 섬 등성이 상당 부분이 유실되기도 했으나,
1930년대만 해도 동서 2㎞ 남북 885m 면적 118만㎡(35만4천여평)에 이르는 큰 모래섬이었다.

예로부터 저자도는 선유도처럼 주변 경치가 절경이어서 왕족이나 양반들의 놀이터였다.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저자도에서 배를 띄우고 강변에서 군사들이 씨름하는 광경을 보며 즐겼다.

세종은 저자도까지 와서 대마도 정벌에 나선 이종무 장군을 전송하였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에는 철종이 그의 부마인 박영효에게 이 섬과 함께 압구정(압구정동 한강가의 정자)을 하사했다.
1950~60년대 저자도는 여름이면 시민들이 나룻배로 건너와 삼복더위를 식히던 시민들의 휴양지였다.
1960년댈 말 저자도는 '개발'에 밀려 한강에서 '사라진 섬'이 된다.
69년 현대건설은 건설부로부터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받은 저자도에 손을 댄다.

저자도의 모래 80만㎦를 파내 압구정지구 4만8천여평을 매립하는 데 이용했다.
72년 매립이 끝날 즈음 저자도의 상당 부분은 물속에 잠긴다.
현대건설은 처음에는 매립 목적을 콘크리트 제품공장 건설이라고 밝혔다.

그 실시계획 인가 과정에서 택지 조성으로 변경했다.
현대건설은 이 지구에 75~77년 현대아파트 23동 1562가구를 건설했으며,

뒤에 모두 76개동 5909가구의 현대아파트단지로 확대됐다.

서울시는 '저자도를 살리자'는 시민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복원할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출처:조영희의 한강이야기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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