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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휴가<2>(낙산사)

천수만이무기 2024. 8. 10. 17:55

 

 

 


 
낙산사 [洛山寺]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이다.

관세음보살이 머무른다는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 

즉 낙산(오봉산)에 있는 사찰로,  신라 문무왕 11년(671년)에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전설에 따르면, 의상이 관세음보살을 만나고자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바다에 투신하려 하였다. 

이때 바닷가 굴 속에서 희미하게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와 수정염주(水晶念珠)를 건네주며

 

 "내 전신(前身)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대나무 2그루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그곳이 바로 

원통보전(圓通寶殿) 터라고 한다. 

이를 계기로 오봉산을 관세음보살이 있는 

낙산(보타락가산)이라 여겨 '낙산사'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외에 부속건물로 의상대(義湘臺), 홍련암(紅蓮庵) 등이 있으며 

일대가 사적 제495호로 지정되었다.

3대 관음기도도량으로도 손꼽히고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조선 세조 때 다시 세운 7층석탑을 비롯하여 원통보전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 및 홍예문 등이 있다.

해수관음상ㆍ의상대ㆍ홍련암은 낙산사의 3대 랜드마크다.


 

2005년 산불로 인한 전소[편집]

2005년 4월 4일 일어난 큰 산불이 5일 오전 

낙산사로 번져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 

 

당시 산불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이전부터 

낙산사 주변에서 물을 뿌리며 확산을 막던 소방헬기들도

 

다른 곳의 불을 끄느라 도저히 낙산사로 올 수 없었고, 

그나마 진화를 위해 출동한 소방차마저 불에 탈 정도였다. 

 

낙산사의 승려와 신도들이 소화기로 불을 꺼보려 했지만 

고작 소화기 따위로 이 큰 산불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당시의 뉴스(2016년) 관련기사

이 화재로 보물 제479호로 지정되었던 낙산사 동종이 

녹아서 소실되면서 결국 같은 해 7월 7일 지정해제되었다. 

 

산불에 어떻게 금속 종이 녹아내리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나무가 탈 때 내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크다. 

산불 같은 대화재의 겉불꽃(제일 뜨거운 부분)은 천수백°C로

녹는점이 1000°C 근처인 구리나 청동은 충분히 녹일 수 있다.

 

게다가 차라리 종이 넘어져서 땅바닥으로 굴러갔다면 

손상은 입어도 녹지 않았을 텐데, 하필이면 종루가 불타서
종을 그대로 덮어버려서 화덕에 들어간 꼴이 되어 녹아버리고 말았다.

전소 이후 복원불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다만 불타기 전의 낙산사는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뒤 성급하게 지어져 
꽤나 난잡한 상태였기에 바로 복원하지는 않았고 발굴 조사를 통해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낙산사 유구를 발견했다.

그 중 낙산사가 가장 번성하였던 조선시대의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결정이 났고, 
김홍도의 낙산사도(김홍도필 금강사군첩 낙산사 )를 참고하여 
복원불사에 착수하여 2007년 4월 5일 복원이 완료되었다.

복원 과정에서 형태가 바뀐 전각도 여럿 있으며, 저번처럼 타버리지 않게 
불에 강한 나무를 심거나 바람길을 뚫는 등 화재에 보다 대비했다. 

또한 화재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화재 이전보다 
고압수방수 살포장비 등 비상대응 장비를 여기저기에 설치하였다.

화재 이전의 낙산사는 거의 숲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나무가 많았었는데, 
복원된 뒤에는 약간 휑하게 보일 정도로 경내에 나무가 없어졌다. 

그래도 산불 이후 15년이 지난 2020년대에는 
어느 정도 나무들이 커져 그런대로 숲이 울창해지긴 했다.

낙산사 동종 역시 예전의 형태대로 복원되었지만 

문화재로 등재되지는 못했다. 

 

앞서 서술했듯이 문화재청이 문화재 가치를 잃었다고 하여 

보물에서 지정해제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