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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성… ‘온달장군이 전사한 곳’

천수만이무기 2012. 6. 15. 17:25

‘온달장군이 전사한 곳’ 알려지며 유명

 

아단성·장한성·광장성으로 불리기도 하는 아차산성은 서울 광진구 광장동과 구의동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누가 축조를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삼국시대 한강 일대를 빼앗기 위해 벌어진 치열한 전투의 승패에 따라 이 성의 주인이 백제에서 고구려, 신라 순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성이 축조된 아차산의 한자 표기는 '阿嵯山' '峨嵯山' '阿且山' 등으로 혼용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아차(阿且)'와 '아단(阿旦)' 등 두 문자가 나타나며, 조선시대에 쓰여진 고려역사책인 고려사에는 '아차(峨嵯)'가 처음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봉화산을 포함하여 망우리 공동묘지 지역과 용마봉 등 광범위한 지역을 모두 아차산으로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네이버 백과사전의 설명이다.

또 달리 전해지는 아차산의 유래는 조선 명종 때의 일이다. 당시 도성에 점을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한 홍계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명종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쥐가 들어 있는 궤짝으로 능력을 시험했다고 한다.

그가 쥐의 숫자를 맞히지 못하자 명종은 사형을 명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 후 궤짝에 있는 암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들어 있어서 '아차' 하고 사형을 중지토록 했지만 이미 때가 늦어 홍계관은 죽었다. 이후 사형집행 장소의 위쪽 산을 아차산이라고 불렀다는 것.

아차산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이 추억되는 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평강공주'와의 사랑으로 고구려의 '용장'이 된 '온달장군'이 신라군과 전투 중 이곳 아차산성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온달장군이 목을 축였다는 온달샘과 고구려의 '산성 안의 산성'인 '보루'의 흔적도 대부분 남아 있다.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던 까닭에 백제 초기부터 고구려의 남진에 대비해 축조된 아차산성은 둘레의 길이가 약 1㎞, 평균 높이는 약 10m에 이른다. 험하지 않은 등산로를 오르면 서울시내와 멀리 성남의 남한산까지 조망할 수 있고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풍광을 즐길 수 있어 걷기와 산행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옛날 광진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며 바라보는 아차산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과 같아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다고도 한다. 아차산성 주변으로 배드민턴장, 씨름장, 팔각정 등 생태공원, 자생식물 관찰로 등이 조성돼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박광재 기자 kj5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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