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시 번식지에 조류 사진가 자율적 공동 위장막 설치 운영
무분별한 촬영 부작용 막아…적정 거리와 규모 등 지침 마련 시급
무분별한 촬영 부작용 막아…적정 거리와 규모 등 지침 마련 시급
7월 초 대전의 한 호반새 번식지에서 느티나무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는 호반새를 촬영하기 위해 200여 명의 사진가들이 ‘대포’(대형 망원렌즈를 장착한 사진기)를 설치한 모습(왼쪽). 반대로 일부 조류 사진가들이 자발적으로 가림막을 설치해 청호반새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고 질서 있게 탐조를 할 수 있도록 한 경기도 양주의 한 번식지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사진 왼쪽 익명의 독자 제공, 오른쪽 윤순영 이사장 제공.
냇가에서 사냥감을 기다리는 호반새.
몇 년 전만 해도 새는 조류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람들의 소재였다.
이제는 꽃 사진이나 풍경사진을 즐기던 사진동호인들과 다양한 사람들이 조류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새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부작용이 늘고 있다.
망원렌즈와 위장막은 새를 촬영할 때 꼭 필요한 장비이다. 새를 놀라게 하지 않고 기다리면서 자연스런 생태를 촬영할 수 있게 해 준다.
잘못된 조류 사진 촬영의 예.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시야를 가리는 둥지 위 나뭇가지를 모두 제거했다. 맹금류 등 천적에게 먹이가 여기 있다고 알리는 셈이 됐다. 백로 새끼는 불안에 떨고 있다.
일부 몰지각한 사진가는 좋은 사진을 얻는 데만 급급해 둥지를 옮기거나 나무를 자르고,
심지어 새끼를 꺼내 어미를 유인하는 등 물의를 빚기도 한다.
근래에는 새들의 번식 둥지를 찾아낸 뒤 사진가들로부터 5만∼10만원의 돈을 받고 그 장소로 안내하는 ‘둥지 판매’까지 등장했다.
편안한 탐조와 촬영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부는 촬영자의 요구에 맞춰 인위적으로
둥지를 훼손하고 위치를 바꾸는 등 새들의 번식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행위를 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청호반새가 들쥐를 사냥했다.
사냥한 들쥐를 물고 둥지로 향하는 청호반새.
문제는 동물한테 방해를 넘어 학대로 이어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인위적인 간섭과 지나친 연출로 안정된 생태를 교란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다.
사진을 위해 자연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한 현실이 안타깝다.
개구리와 딱정벌레를 사냥한 뒤 나란히 나뭇가지에 앉은 청호반새 부부. 윤수형 제공.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양주시에서 청호반새를 촬영하고 있는데 요즘 보기 드문 모범 사례라고 했다.
9일 이른 아침 경기도 양주로 향했다.
농경지를 에워싸고 있는 산에 흙 벼랑이 잘 발달해 있어 흙벽에 구멍을 뚫어
둥지를 만드는 청호반새에게 적합한 번식지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예약자들이 청호반새를 촬영하고 있었다. 철저한 위장과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야산 골짜기의 청호반새 번식지.
임시 가설막. 새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잘 정돈된 형태로 설치됐다.
번식지 주변에 은폐막을 만들고 은폐막 바깥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것을 막아 지정된 장소에서만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촬영자가 지켜야 할 규칙을 지정석마다 걸어 놓은 것도 눈에 띄었다. 입구에는 사전에 예약을 할 수 있도록 안내판에 전화번호를 적어놓았다.
무작정 청호반새를 촬영하러 오게 되면 되돌아가야 한다. 필자도 사전예약을 하고 그곳을 찾아갔다.
예약 없이 온 사진인들은 불만 없이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일이다.
번식지 주변으로 가림막을 쳐 방해요인을 줄였다.
탐조인을 위한 안내문.
만약 이곳에 이런 시설을 만들지 않았다면 사진인들이 둥지 주변에 둘러서
자리싸움을 하며 떠들어대는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몇 년 전에 시화호에서 사진을 촬영하며 수리부엉이 둥지를 훼손해 사회적 문제가 되어 벌금형을 받은 사례가 있다.
가설막 내부엔 위치마다 촬영자가 지켜야 될 규칙이 적혀 있다.
양주시에 위치한 청호반새 번식지는 이미 공개돼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번식지에 위장막을 설치한 권관중씨를 비롯한 몇몇 동호인이 청호반새 보호를 위해 3일간 위장막을 만들었다.
무분별한 조류 사진 촬영 풍토를 바꾸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위장막 내부에 큼직한 글씨로 경고문이 붙어 있다.
그리고 먼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촬영 기회를 독차지하지 못하도록 해 모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물론 토지주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하여 청호반새가 이소할 때까지의 촬영을 허락받았다고 했다. 찰영자에게 위장막 사용료는 받지 않는다.
예약 좌석 번호.
양주의 청호반새 번식지가 알려진 것은 5년 전이다.
입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사진가들이 몰려들었고 무분별한 촬영과 주민과의 갈등이 빚어졌다.
권관중씨 등 일부 탐조가들이 재작년 공동 위장막을 설치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번식지와 대형 위장막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일부 언론의 문제제기로 시청과 경찰이 조사하는 등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과연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새들이 번식에 지장을 받지 않는지 등 바람직한 탐조를 위한 지침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어쨌든 양주의 청호반새 새끼는 무사히 둥지를 떠났고 공동 위장막은 14일 철거됐다.
임시 가설막을 설치한 권관중씨(왼쪽)와 촬영 디렉터 김응성씨가 탐조촬영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을 촬영하다 보면 욕심이 나는 게 인지상정이다. 가설막에서 촬영자들이 규칙을 어기지 않고 행동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촬영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사진인들이 자연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더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바란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