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내고향 궁리 포구 본문
내고향 궁리포구
정오를 지난 따가운 햇볕이 백사장 모래알을 볶아 놓았다
때가 지나는것도 모르고 바닷물 속에서 물장구 치다
백사장에 나와 보면 하얀 진주알 흘려 놓은듯 동글동글한 모래알들이
발바닥을 간지리며 따끈 따끈 종종 걸음을 딛게한다
여름철 만조에 푸른 바닷물 백사장 가득 잔물결 넘실댈때 모래위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베잠뱅이, 삼베 등거리 바람에 날릴까 넓적한 돌멩이 주워다 옷위에 올려놓고
물가에 오리 처럼 바다속으로 달음질친다
개헤엄 둥둥대면 넓다란 푸른 바다는 어느새 개구쟁이들 놀이터가 되고 수영장이 된다
갑자기 커다란 파도라도 밀려오면 짭짤한 바닷물 한모금 꿀꺽 코로 입으로 정신없이 들이킨다
신나게 놀다 보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시장끼가 돌기 시작하고 백사장에 가득하던 잔물결은 벌써
시꺼먼 갯뻘만 남겨 놓고 저만치 빠져 나가고있다 노는데 정신이 팔려 점심때가 한참 지나고
썰물로 물이 다 빠져나간 뒤 그제서야 배고픔을 느끼며 뭍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너나 할것없이 새까만 얼굴은 아프리카 토인을 닮았고
동그란 두눈만 반짝일 뿐 허기진 눈들은 십리는 들어가 보인다
물빠진 갯뻘을 발가벗은 몸으로 달려 나오면서 바닥에 널려있는
짭짤한 미역 줄기라도 주워 먹으며 허기를 달래본다
백사장에 벗어 놓앗던 옷가지 챙겨들고 뚝넘어 둠벙으로 잽싸게 뛴다
벼논가 둠벙에가서 온몸에 하얗게 일어난 소금기며 시커먼 갯뻘을
대강대강 씻어내고 다들 집으로 향한다
50여년 전 내가 자라던 서해안 충청도 천수만 바닷가
아주 작은 시골 마을 궁리포구의 아이들 놀이터 풍경이다
이렇게 낭만이 가득하던 해변이 지금은 바다를 가로막은 커다란 방조제 둑이 생기고
포구엔 방파제를 쌓고 백사장이였던 바닷가 모래밭은 잘 정돈된 도시 처럼 보도 블록이 깔렸다
갯모래가 수북하고 해당화 곱게피며 물떼새 모래밭에 새끼치던 장벌가엔
높다란 석축으로 답답한 장벽이 생기고 뚝방위엔 분주한 차량만이 오락가락 말없이 왕래한다
시커먼 아스팔트 신작로는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을 짙게 그으며 끝 없이 일자로 길게 가로 누워
낭만의 추억을 단절한다 내 어린 날의 회상을 딱딱하게 굳혀 놓는듯 서먹함 마져 들게 하고
빠르게 변해가는 현실을 확실하게 실감케한다
"궁리포구" 이동네 사람들은 "하리"라고 많이 부르며 길을 물어 볼때는
"하리"가어디냐고 물어야 더 잘알고 있으며 궁리는 행정구역상 그쪽 해변
전체를 말하며 현재의 궁리포구는 동네 이름이 "하리"이다
하리 마을은 서해안 고속도로 홍성 나들목에서 안면도로 가는 자동차 전용 도로를 타고
10여분 남짓이면 도착하는데 방조제 둑이 시작되는 수문 지점에서 궁리교 표지판을 보고
우측 갓길로 들어서면 바로 궁리 포구 마을에 어려움 없이 도착 할수 있다.
매일 마다 물때에 맞추어 작은 어장배들이 드나들고,
선창가 갯마을에 횟집이 몇집 있으나 아주 한적한 시골 해변 그대로이다.
원래 사계절 다양하고 잡다한 해산물이 나오던 전형적인 갯벌 마을의 어촌이었다.
집앞 갯벌에 지천으로 깔려 있던 바드래기(바지락)이며 굴,살조개(참꼬막),고둥(참소라),
고네바퀴(골뱅이),대수룩, 게고둥(다슬기),눈머럭대, 박하지(돌게),똘쨍이(돌참게),파래,세모,청각,등등...
언제든지 나가기만 하면 반찬거리는 잡아 왔었는데, 또 여름 장마전이면 동네사람 너나 할것 없이
밤에는 묵은 소나무 가지 관솔로 만든 횃불에 작살들고 망태기에 가득 잡던
망둥어, 장대, 잘잘한 어린 꽃게 사시랭이,능젱이등 잡고기들이 없는게 없었는데...
이제는 지나간 추억 거리로만 여겨야한다 지금은 동네 어촌계에서 주로 굴과 바지락을 양식하며
갯벌을 관리하여 일반인은 함부로 바다에 들어가 채취 할수 없게 되었다
천수만 방조제의 대역사 이후 바닷물의 흐름이 끊겨 생태계가 변하고 잡히는 어종도 줄어들었으며
또 도로가 생기고 교통이 좋아지자 타지인들이 상업을 목적으로 이주해와 정착하면서
동네 토박이들의 인심 마져 옛날만 못해졌다
이로 인해 원주민인 우리 동네 어른들의 시름이 깊어져갔다고나 할까,
옛날에는 주막에서 막걸리 한되를 주문하면 기본적인 해산물 안주며 텃밭에서 따온
매콤하고 싱싱한 풋고추와 마늘에 직접 담근 된장,고추장 정도는 기본으로 챙겨 주었는데 ...
바다를 가로 지른 인공호수가 생기고 자연의 해변이 정리되면서 현대식 가계가 한개 두개 생겨나고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아지기 시작하자 옛 시골 인심은 조금씩 사라져가고 후하던 정마져 줄어들었다
깨끗하고 위생적인 가계로 바뀌긴했지만 인심이나 인정만은 많이 줄었다
그래도 역시 조용한 바닷가 한적한 시골 마을인지라
아직 푸짐하진 않아도 기본적 인심은 남아있는것같다
요즘도 가끔씩은 시골 고향에 가본다
너무 변해서 타향이 된것 같고 어릴때 놀던 바닷가는
어느 도시 한편을 보는것 처럼 현대식 건물에 아스팔트, 너무 낯설어 졌다,
신발 벗어 놓고 뛰놀던 갯마을 백사장 모래밭은 영원히 없어져 다시는 못볼것 같고...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하긴 하지만 낭만과 추억의 고리는 아쉽게도 여기서 단절 되는듯 하다.
이제는 새로운 추억의 싹이 돋아 나겠지, 그래도 고향은 역시 잊을수 없는,
아니 기억에서 영원히 지울수없는 안식처 인가보다.
지금은 방황도 하지만 금새 또 가고 싶어지니까...
난 늘 내 고향과 어릴때 내모습을 생각한다.
바닷가 시골 그 작은 동네에서 꿈도 희망도 모르고 철없이
순진무구(純眞無垢), 발가벗고 천진난만(天眞爛漫)
마냥 즐겁기만했던 아이였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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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봄
천수만 이광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