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고향의노래 본문
김재호詩, 이수인 작곡의 <고향의 노래>
테너 김태현
김재호詩, 이수인 작곡의 <고향의 노래>라는 가곡입니다.
산 박하꽃도 구절초도 왕고들빼기도 져버린 초겨울 새벽 들판에 서보셨습니까?
들판엔 집안의 모든 세간이 이사 가고 남은 휴지 몇 장과 먼지 몇 점만 남은 것 같이 대체로 황량합니다.
그곳에 무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있고 농가의 굴뚝에선 드물게 파랗고 하얀 연기가 곧게 오르고 있습니다.
마치 집 한 채가 고단한 가을걷이를 마치고 담배를 한 대 물어 피우는 것 같습니다.
초겨울 들판은 차갑습니다.
이런 초겨울은 실제보다 춥습니다. 우리 몸과 마음, 그리고 옷이
미처 겨울에 적응하기도 전에 느닷없이 한랭한 공기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장작을 때고 있는 농가의 따뜻한 아랫목이 그립습니다.
과거엔 그 아랫목 이불 속에 밥그릇을 묻어두곤 했습니다.
겨울 밥을 따뜻하게 유지 할 수 없는 보온의 기기가 없었던 그 때는 그랬습니다.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 두었던 밥은 어머니의 정과 나무의 불기운
그리고 목화솜의 이불이 어울려 만들어낸 따뜻함이었습니다.
따뜻함... 참 정다운 우리말입니다.
이런 초겨울은 실제보다 춥습니다.
우리 몸과 마음, 그리고 옷이 미처 겨울에 적응하기도 전에
느닷없이 한랭한 공기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어디론가 향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본 것은 며칠 전이었습니다.
궁형(弓形)을 이루며 날아가는 기러기는 대략 4~50마리는 되어보였습니다.
날아가며 뭉치고 뭉쳤다간 어느 정도 헤어지고 헤어지는가 싶더니 또 모이고
그렇게 기러기 떼는 대열을 바꾸어가며 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헤어지더라도 한 마리만 외롭게 헤어지지는 않습니다.
꼭 몇 마리가 같이 붙어 떨어져 날았다간 다시 대열에 끼어들었습니다.
겨울 하늘을 날며 쓸쓸해지지 않으려는 것은 새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아니 새가 더 정이 깊은 것 같습니다.
사람은 쓸쓸한 사람을 거두어들이길 새만큼은 하지 않습니다.
한적한 빈들의 산박하꽃은 이미 시들었지만 박하향이 아직 남아
그 향이 마치 떠나간 사람 모습의 잔영 같고 잔향 같습니다.
사람의 모습이 꽃처럼 기억된다는 것은 다행입니다.
아니 사람이 정말 꽃 같습니다.
대체 사람을 꽃으로 비유하거나 은유하지 않을 도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누군가에게 무슨 꽃으로 기억될까요?
나는 칡꽃을 좋아하니 칡꽃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향집 눈 속의 꽃 등불을 보았습니까?
나는 어느 해 혹한의 산속을 행군한 적이 있습니다.
전날에 내린 눈이 미처 녹기도 전에 또 새눈이 밤하늘에 내리는 고단한 밤이었습니다.
산과 나무만 끝없이 펼쳐지고 온 몸이 얼어붙는 듯 하고 갈 길도 한없이 먼 아주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산 속에 깜빡이는 작은 등불하나,
그것은 산촌의 외딴집 따뜻한 방에서 피어나는 꽃 등불이었습니다.
등불 하나가 우리 중대원들에게 보내준 선물. 그것은 비록 작은 등불이었지만
오월의 꽃밭 같고 쩔쩔 끓는 아랫목의 따뜻함 같았습니다. 정말 꽃 등불 같았습니다.
이 <고향의 노래>를 들으면 나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초겨울 무서리같이 차며 선뜩하고 명료한 시를 짓고 싶습니다.
서리 같고 첫눈같이 차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그런 시를 짓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세상에 피었다진 들꽃같이
어느 순간 어느 곳에 잠시 환하게 피어있다 조용히 사라지는
그런 시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시인이 되기란...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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