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아버지의 아르바이트 본문

글모음/이런 저런 이야기

아버지의 아르바이트

천수만이무기 2023. 2. 11. 14:49

 

 

 

아버지의 아르바이트  

평생 꽃 한 송이 선물한 적 없던
아버지가 꽃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친구들과 지하철을 탔는데 우연히
아버지와 마주친 것이었다.

아버지는 당황해 손에 든 걸 놓칠 뻔했다.
꽃은 사치라고 여기던 아버지라 참 의외였다.
친구들은 로맨틱하다며 야단이었다.  

꽃 사이로

“사랑하는 선영 씨! 생일 축하해요.”라는 메모가 보였다.

친구들이 부러워할수록 눈시울은 점점 뜨거워졌다.
선영 씨는 엄마가 아니라고 얘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퇴근하는 아버지를 골목에서 기다렸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

아버지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당시 항암 치료 중이던 엄마한텐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아버지가 화장실에 간 사이 문자 메시지 수신음이 울렸다.
선영 씨인가 싶어 손이 벌벌 떨렸다.


“지하철 퀵서비스입니다.
내일 여섯 시 교대역으로 꽃 배달 가능하시면 답장 바랍니다.”


비로소 꽃바구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명예퇴직 사실을 숨긴 채 가족 몰래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이다.


힘이 되지는 못할망정 오해하고 미워했으니 미안함에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 제사를 마치고 아버지에게 농담을 건넸다.


“엄마 꽃이 선영 씨 꽃보다 작은 거 아니에요?
그때 보니 꽃바구니가 무거워 휘청하던데.
이제 아르바이트 그만하세요.”


아버지는 웃으면서 가장의 무게가 실려 그랬을 거라며
지금은 받는 이들의 꽃보다 아름다운 표정 때문에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봐라! 너희 엄마도 꽃 받고 좋아서 저렇게 웃고 있지 않니?”
아버지의 꽃바구니를 바라보는 영정 사진 속 엄마가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글모음 > 이런 저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 시니어존(No Senior Zone)  (0) 2023.05.24
강가 초막(草幕)의 꿈  (0) 2023.03.31
변해가는 인연...  (0) 2022.11.05
귀 빠진 날  (0) 2022.03.30
낀 세대(世代) 70대  (0) 202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