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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옛날 생각

화롯 불

천수만이무기 2009. 1. 18. 20:16

 

 

화롯 불

 

날씨가 꽤나 춥다 오늘 아침 서울 기온이 영하 12도 라니

올겨울 들어서는 제일 추운가 보다

 

내일은 더 춥다고 한다 하기야 소, 대한 절기에 접어든 

엄동설한 한겨울 날씨이니 이 정도는 추워야 되겠지...

 

서해안을 비롯한 호남 지방은 대설 주의보까지 발표되었다 

눈이 많이 내린다는 일기예보이다 

사실 예전에 내가 어렸을 때는

이보다 훨씬 더 춥고 눈이 많이 내렸던 것 같다


폭설이 무섭게 내리던 어떤 해에는 외딴 마을이 

교통이며 통신 마져 두절되어 고립되고 쌓인 눈의 무게가

비닐하우스를 무너뜨리며, 수십 년 묵은 거목의 가지도

엿가락처럼 꺾여 내리지 않았던가...


이제 막 겨울의 한가운데 들어섰으니 

올 겨울은  어떻게 지나갈지 알 수는 없지만

오늘부터 며칠간은 계속 제법 추운 날씨가 예상된다고 한다

 

미리 강추위나 폭설에도 대비하여

올해는 큰 피해 없이 새봄을 맞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눈발이 날리며 추워지니 어렸을 때 차디찬 방 안에서  

화롯불에 주전부리 구워 먹던 시골에서의 옛날이 생각난다

 

한겨울 추운 밤 따뜻한 아랫목에 광목 호청 두툼한 목화솜이불 단단히 여미고

곤한 잠 청할 때에 몰아치는 북풍한설은 밤새도록 문풍지를 울려대고 

 

윗목에 놓아둔 자릿기 숭늉 그릇이며 젖은 물걸레는

꽁꽁 얼어붙어 동태 되기 일쑤였다

 

동지섣달 긴긴밤이 지겹기도 하련마는

날이 밝아 아침이 되어도 이불속에서 나오기는

 

 "오줌 싼날 키를 쓰고 소금 받으러 대문 밖 나서기"와

진배없이 눈치만 보면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부모님은 아침 일찍 쇠죽 솥에 물을 끓여

소여물 먹이시고 아궁이에 이글이글 타고 남은 

벌건 숯 불덩어리 묵직한 무쇠 화로에 가득 담아 방안에 넣어 주신다

 

할머니는 화로 안에 훨훨 이는 불 꽃이 방바닥에 깔아놓은 왕골자리

바닥이라도 눌릴까 봐 불손으로 다독다독 정리한 후 화로 방석 밑에 깔고

가득 담은 숯불 화로 받침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으신다

  

아이들의 간식거리 얇게 저민 가래떡에

감자, 고구마 구워지고 군밤 나누면서 형제간에 싸움 나고

 

할아버지 긴 장죽 담뱃대는 다독다독

사그라 가는 화롯 속의 불씨를 모으신다

 

건넌방 화로 앞에는 바느질하시는

어머니의 다림질 인두가 부지런히 잿 불속을 드나든다,

 

할아버지 아버지 한복 저고리 동정을 갈아 다실 때

언제나 어머니 무릎 위엔 좁다란 인두판이 올려져 있었다

한 땀 한땀 바느질하시며 다림질하시던

어머니의 주름 깊은 얼굴 모습이 정겹게 떠오른다

 

뒤꿈치 구멍 난 목(면) 양말,  뚫어진 내복 기워 주실 때도

어머니는 언제나 화로 앞에 앉아 바느질하셨다

정말 정겹고 따듯한 숯불 화로였는데....

 

옛날엔 놋쇠로된 예쁜 화로도 있었으나

일정 때 전쟁에 정신 나간 왜놈들이 무기 제조에 혈안이 되어

 

정황, 상황 안 가리고 밥주걱에 숟가락, 젓가락, 밥그릇 할 것 없이

놋쇠로된 모든 기물은 전부다 공출로 모조리 빼앗아 갔다

 

그러니 할 수 없이 투박하고 볼품없는 무쇠 화로가 대신하게 되었지만

당시 생활로는 겨울에 화로 없이는 불가능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정겹고 가까웠던 화롯불도 

무심코 즐기다 보면 의례히 "불머리"란 두통으로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숯불로 인한 일산화탄소의 증가와 산소 부족으로

예외 없이 머리가 아팠으니 이것을 "불머리"라 하였다

 

잠시 방문을 열어 놓고 환기시키면 금세 없어지긴 했지만  

아픈 머리 수건으로 질끈 동여매고 동치미 국물 찾으시던

할머니와 이웃집 노인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네 집 내 집 할 것 없이 어느 집에나 세네 개씩

시커먼 입 크게 벌리고 산천 초목 다 먹어 치우던  부엌의 아궁이도

 

많은 사람들의 총애를 받던 안방 화로의 부젓가락도 

인두도 모두 다 사라져 자취를 감춘 옛 이름뿐이다

 

문명의 이기에 밀려

정말 보기 힘든 추억 속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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