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이무기
워커힐 호텔 "인디언" 이야기 본문
내가 워커힐 근무 하던 초기에 선배님 들이 "인디언"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난 인디언이 무었인가 궁금해서 당시 같이 근무 하던 인디언 멤버이신 유도영,임순칠,문낙훈,권오주,정장영선배님
등에게 물어 보았다
처음 워커힐 오픈 당시 국제 관광 공사에서 공개 채용했던 신입 동기 이제 중학교를 막 졸업하는 소년들의 애칭이었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인디언이라고 할까? 어떻게 해서 생긴 이름일까? 재미 있는 상상이 되기도 하고 궁금 했다
1962년 그러니까 워커힐 오픈하기 바로 전년도, 현재 중학교 졸업을 앞둔 중3의 나이 어린 신입 사원이었다고 한다
그당시 워커힐 오픈 준비를 하고 있던 국제 관광공사에서는 전국의 중학교 졸업반 학생 중에서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향학 열은 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학교장으로 부터 추천 받아 채용하고 야간 고등학교도 보내 주며
해외 교육도 시켜준다는 모집 요강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많은 지원자가 1차로 각 도에서 예비 시험을 거쳐 합격 한 학생만 서울에 올라와 2차 본 시험을 보게되었다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합격한 사람이 120 여명 이라고 했다
40대1의 경쟁이었다고 ....조금 뻥치는것 같기도 했지만 정말 많은 학생이 지원 했고 경쟁력도 대단 했던것은 사실인것 같다
어쨌든 이분들이 나중에 우리나라 호텔 및 관광 업계를 끌고 가게될 그 이름도 유명한 "인디언 클럽"요원들 이시다
이렇게 해서 정식으로 발령 받은 입사일이 개관 3개월 전인 1963년 1월 8일이고,그후 4월 8일이 역사적인 워커힐 개관일이다
그래서 입사일인 매년 1월 8일이 인디언 클럽 정기 모임일 이라고 했다.
45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매년 1월8일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 모여서 굳은 친목을 다지고 계시답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 1월 8일 이네요,자랑 스러운 선배님들의 무궁한 발전과 건투를 빕니다
얘기가 빗나가는듯 합니다만 들은 얘기가 하도 많아서 정리가 잘 안되고 옆으로 빠지네요 .....
다시 본론으로 와서 63년 1월 8일 그때 부터 호텔 맨으로서의 교육 담금질의 시작 이었답니다
엄격한 규율 아래 지금의 동문 그당시 후문 기숙사에서 합숙하며 아침에 자고 나면 기숙사에서 교육장인 다글라스 하우스까지
올라가 매일 매일 힘든 교육과 실습을 받게 되었다, 교육과 실습 뿐만 아니라 온갓 잡다한 일들 매일 반복 이었다고....
얼굴은 아직도 소년에 시골티를 못 면하고 빡빡 머리에 새카만 병아리들,이들이 매일 매일 줄지어 후문 기숙사에서 교육장인
맨위에 다글라스 까지 숲속으로 산을 타며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을 보고 선배들이 마치 인디언들이 이동하는것과 같다고 해서
부르기시작한 이름이 바로 "인디언"이랍니다
그때는 선배들의 이런 놀림거리가 되는것이 달갑지 않고 인디언이라 부르는것이 싫었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 품을 떠나 이렇게 힘든 사회생활의 시작이 된 것이다
생각 해보면 중3 지금 우리 아이들 무엇을 할수 있을 까요?
그러나 인디언 선배님들은 그 어린 나이에 대견 스럽게도 낮에는 열심히 일해야 했고 야간 에는 공부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주경야독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노력 하여 지금은 우리나라 관광업계는 물론 대학 교수등 학계,금융계 종교계, 각 분야에
진출 하여 왕성한 활약을 하고있습니다
현재는 워커힐에 한분도 안계시지만 "인디언 클럽" 선배님들이 물려 주신 부지런 함과 주경야독, 노력의 본보기 등 인디언의 정신 만은
잘 계승되어 회사 발전과 사회 생활에 큰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초로를 넘기시고 인생의 황금 수확기에 임하시는 선배님들의 건강과 행운을 빌며 아울러 무궁한 발전이 있으시길 기원 합니다
2009년 1월 후배 이광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