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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당시 워커힐

천수만이무기 2009. 1. 28. 11:16

정부의 관광 진흥 시책의 일환으로 국제 관광공사가 운영을 맡아 1963년 4월8일 워커힐 호텔을 개관

하게되었다

그당시 우리나라 호텔 산업은 거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고 주로 호텔 이용 고객인 외국인도 그리 많지

않았으며 주한 미군이 주 고객인 셈이었지만 그들을 유치 할만한 시설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 된다

그래서 한국 주둔 유엔군 병사들이 휴가를 받으면 모두 일본이나 홍콩등으로 나가서 즐기고 왔던것이다

 

여기에 중점을 두고 유엔군 휴가 장병을 유치하면서 외국인 관광객 수용 시설로 활용해서 외화 획득과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정부의 결정이었던 같다

따라서 개관 초에는 내국인은 이들 외국인이 초대할 경우만 출입을 하도록 제한 했었다

 

어쨌던 이렇게 탄생된 워커힐 호텔은 이후 한국을 대표 하는 호텔로서 그 위치를 굳히고 우리나라

호텔산업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며 성장해 왔다

현재도 관광 관련  정부 기관 및 대학의 교수진과 각 호텔의 주요 요직에 많은 워커힐 출신 인사들이 

자리 하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것이 그 증거이다

역시 워커힐이 우리나라 호텔산업의 선구자이자 개척자 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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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당시 현황

메인 빌딩으로 4층, 지금의 컨벤션 센타 무궁화 볼룸자리에 메인 데스크,그릴,수영장,볼링장,게임장,

태평양 나이트클럽 "PTR" (지금 가야금 극장식당 KTR의 전신),바,등 편의시설이 모두 이곳에있었다

 

워커힐을 상징으로하는W자형 기둥의 전망대 "힐탑바"지금의 피자힐,"한국 민속관" 지금" 명월관"

당시는 대청 마루와 2개의 커다란 온돌방 이었으며 현재 가든인 정원에 400여평의 인공 연못이 있었다

 

그외 식음료 영업장은 현관 입구에 "랑데뷰" 커피숍 안쪽으로 "리버사이드바" 지하에 양식당 그릴

 "온달" 그리고 안쪽에 중국관 "금용"이 있었다

 

객실은

다글라스.메튜.멕스웰.라이만.제임스 5개 동으로 각 동에 간단한 식사를 할수 있는 "스낵바"가 딸려

있었고 객실 소속인 룸서비스에서 담당 서비를했다

각 하우스의 이름은 6.25 동란때 참전했던 역대 유엔군 사령관들의 이름이다

 

현재는 맨 밑에 있었던 제임스 하우스 자리에 새로운 건물로 2007년 신축, SK 연수원 겸 객실, 연회장 

으로 사용되는"아카디아"가 새롭게 운영중이다

 

빌라:보석의 이름으로 모두 13개동.

에메랄드,제이드,사파이어,루비,펄.( 펄은 1호,2호...해서 9개동).

그밖에 지금 워커힐 아파트 자리에 "승마구락부,정구장,사격장,배드민턴장,궁술장등이 있었다

                                                                

이렇게 쓰다보니 선배 혹은 후배님들의 옛날 경험담이나 하고 싶은 얘기들을  댓글로 함께 하시면

더욱 실감 나고 좋을듯한 생각이 듭니다

이글 보시고 생각나는 추억의 한말씀 부탁 드립니다

 

           다음은 초창기 "인디언" 선배님들의 이야기와 각 "식음료" 영업장을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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